국제 국제일반

[심층진단] 기업은 깎아주고 개인은 늘리고… 경기·재정 두 토끼 잡는다

[주요국 세금정책 투 트랙 전략] <br>재정적자 해소 급해도 票보다 경제 선순환 위해<br>법인세 부담 줄여주고 유권자엔 증세 이유 설득<br>부가세 올려 세수 확보


세계 주요국들이 경기부양과 재정 건전화라는 상충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투 트랙(two-track)' 세금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 인하 등 기업 부담은 대폭 줄여 경기 활성화에 나서는 한편 부유층 세금이나 부가가치세 등 개인에게 붙는 세금은 늘려 세수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올해 지구촌이 줄줄이 선거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유권자들에게는 인기 없는 세금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재정적자 해소가 시급한 마당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업들의 세 부담 완화에 나서는 것은 '기업 유치 및 경영 활성화-고용창출-개인 소득 증대-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을 일으키기 위한 조치이다.

한마디로 정밀유도폭탄(목표를 향해 진로를 유도하는 폭탄)처럼 세금정책을 정교하게 조합해 글로벌 재정난과 경제침체라는 두 가지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증세냐, 감세냐'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단선적인 논쟁에 매몰돼 있거나 '대기업 때리기'에 골몰하는 국내 정치권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국제 추세로 자리잡은 법인세 인하=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35%에서 28%로 대폭 낮추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제조업체의 경우 우대조치를 받아 세율이 25%까지 낮아진다. 미국을 지키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수년 동안 지속돼온 세계적인 흐름의 한 예일 뿐이다. 영국이 2010년부터 법인세율을 단계적으로 24%까지 낮추는 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2010년 대만과 싱가포르 등이 각각 세율을 17%까지 낮췄다. 최근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양국 정상회담에서 공동 세금체계를 구축하기로 함에 따라 현재 34%를 넘는 프랑스의 법인세율이 30% 수준인 독일 수준에서 수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 밖에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를 낮추는 대신 부가가치세를 인상해 재정을 메우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유독 높은 법인세를 유지해온 일본도 대열에 동참한다. 일본의 법인실효세율은 도쿄 기준 40.69%에서 오는 4월부터 35.64%로 낮아질 예정이었지만 대지진 부흥재원 마련을 위해 3년 동안 2.4%포인트에 달하는 임시 부가세를 부과하기로 해 당분간은 38.01%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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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세로 세수 확보…확산되는 독일식 세제개편=반면 갈수록 악화하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한 푼의 세금이 아쉬운 각국 입장에서는 증세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각국 정부는 세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소득을 올리거나 재산을 보유한 개인을 지목하고 있다.

스페인이 지난해 한시적으로 70만유로(10억원 상당)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특별재산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했으며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연간 10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 최소 30%의 세율을 적용하고 개인 최고소득세율을 기존 35%에서 39.6%까지 올리는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일본에서는 내년 1월부터 25년간 소득세액이 2.1%포인트 인상된다. 프랑스에서도 최근 부유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기로 한 데 이어 대선을 앞두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금융소득세와 상속세 인상안을 내놓는 등 소득 상위계층에 대한 증세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재정난에 시달리는 유럽 각국과 일본 등은 세입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부가세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가 현행 19.6%인 부가가치세를 올 10월 이후 21.2%로 인상할 예정이며 이탈리아도 9월부터 부가가치세율을 21%에서 23%로 올리기로 했다. 그리스ㆍ포르투갈ㆍ스페인ㆍ슬로바키아 등도 2010년 이후 줄줄이 부가가치세를 인상했다.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정권의 사활을 걸고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적자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부가가치세 인상에 나선 이들 국가의 '모델'은 독일이다. 독일은 2008년 실시한 세제개혁에서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대신 부가가치세율을 3%포인트 인상해 재정균형을 맞추고 경제성장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거가 변수…포퓰리즘으로 재정난 악화할 수도=다만 이 같은 각국의 세제개편안은 올해 선거라는 대형 변수의 결과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하는 안보다 더욱 가파른 법인세 인하와 부유세 도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유력한 미 공화당 경선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세추세츠 주지사는 법인세를 25%로 10%포인트 낮추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도 기존 35%에서 28%까지 내리겠다는 대규모 감세안을 내걸고 있다.

또 프랑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사르코지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친기업'을 주장하는 우파 대통령인 사르코지와 달리 대기업과 고소득자, 금융권에 대한 세금인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재정적자 해소 방안으로 시종일관 부자 증세를 주장해온 올랑드 후보는 급기야 28일 연봉 100만유로(15억원 상당)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해 최고 75%를 과세하겠다는 세제안을 들고 나왔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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