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시각장애인과 모나리자

이병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오늘날 문화는 국가 정책의 주요 키워드가 됐다. 새 정부가 지난해를 문화 융성 원년의 해로 삼은 데 이어 올해는 문화 융성을 위해 내용적으로 많은 결실을 거둬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문화 융성은 국민 개개인이 문화를 통해 행복을 누리며 국민의 행복을 다시 문화로 발전시키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지난해 말 '문화기본법'을 제정했다.


명화 설명해주는 박물관 없어

문화를 누리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으로 법제화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앞으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신체적 장애로 인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문화권에서 소외된 계층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아직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을 예로 들어보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내 문화예술 콘텐츠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작품의 오디오 해설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인을 위해 제작된 콘텐츠로 작가·배경 등 미술사적인 설명을 위주로 담고 있다. 실제 작품을 상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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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명화 해설을 제공하는 곳을 찾기 힘들다. 국내 한 시각장애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하기 위해 멀리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지만 모나리자를 앞에 두고도 어떤 그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도 일반인과 동일한 문화적 갈망을 느끼고 있음을 말해주는 일화로 일반인과 동일한 문화 생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물론 기업의 지원과 전 국민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최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개최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착한 도서관 프로젝트'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적합한 미술 콘텐츠를 개발한 좋은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인의 목소리 재능기부를 통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캠페인으로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아 국내 최초로 미술작품 500점의 생생한 묘사를 담은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해 큰 호응을 얻었다.

소외계층 위한 콘텐츠 개발 절실

이 프로젝트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시각장애인도 눈이 아닌 귀와 마음으로 충분히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목소리 재능기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도 의미가 깊다. 더욱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인과 동일하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됐으며 일반인들은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처럼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콘텐츠 개발은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존에 경험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문화예술 세계를 접하고 감동을 느끼며 함께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누구나 동일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더 나아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 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 융성이자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는 자양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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