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야당진영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폐기공약에 대해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정면으로 비난하면서 정치공방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 양국정부는 오는 3월15일자로 한미FTA를 발효시킨다고 합의해 야당이 더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에 대한 공격포인트를 경제ㆍ안보적 이익에 두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한미FTA의 당위성을 역설했던 야당지도자들의 국민에 대한 약속위반이라는 신뢰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민주통합당의 정동영 의원은 한미FTA의 추진이 처음부터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먼저 사과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과거의 소신과 정책을 변경하면서 그저 '그때는 몰랐다' 라던가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라고 강변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친야당 성향의 언론에서조차 나오고 있는 국면을 정면 돌파해 보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한미FTA폐기를 재확인하고 민주당에 대해서도 동협정의 폐기가 야권연대의 기본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통합진보당의 입장은 선명하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재벌개혁, 중소영세자영업자와 서민을 위한 법률제정과 한미FTA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이 제시하고 있는 재재협상의 내용을 보면 미국이 합의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야당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가정하면, 결국에는 협정폐기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는 구실로서 재재협상을 내세우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합리적이고 열린 토론을 통해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는 무의미하다. 지난 4년간 모든 쟁점이 드러났고 각각의 쟁점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은 이제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그러나 두 진영의 간극은 영원한 평행선일 뿐이다.
여당주장은 한미FTA가 수출증대ㆍ일자리창출ㆍ서비스산업과 경제제도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인 반면에 야당주장은 서민생활의 파탄과 국가공공정책의 무력화라는 대재앙을 불러 온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데에는 국민들의 찬반여론이 거의 대등하게 양분돼 있다는 현실이 작용하고 있다. 협정폐기에 대해서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찬반이 비슷했고 여의도연구소의 조사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그 차이는 근소하다. 특히 20-30대에서는 폐기찬성이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젊은이들의 반미정서가 작용했을 것이다.
극한대립을 그대로 두고 3월15일에 발효한다고 해도, 차기 국회에서 끊임없는 정쟁의 도구가 되고 국정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에 여야는 일단 휴전하고 발효일로부터 3년 후에, 즉 차기 정부 출범 2년 후에 한미FTA의 실현된 효과를 평가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재재협상과 폐기 문제를 검토하면 좋겠다. 평가가 긍정적이면 현재 야당이 집권해도 그대로 효력을 지속시켜야 하고, 평가가 부정적이면 현재 여당이 계속 집권해도 재재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평가는 여야가 합의한 객관적인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충분한 국민토론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스웨덴은 주요법안마다 독립적인 검토위원회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의회가 최종안을 만드는 미풍이 있기 때문에 성장과 복지가 병행한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 지긋지긋한 논란을 잠재우고 스웨덴처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