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파격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다만 민주당은 정부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폐기ㆍ유보를 위한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서를 받아오면 재논의하겠다는 ‘생떼 부리기’식 조건을 달았다. FTA 협정문 조항에 있는 양국 간 협약과 대통령의 약속을 바탕으로 의회에서 충분히 협의해나갈 수 있음에도 미국 정부의 도장이 찍힌 문서가 더 중요하다는 무리한 주장을 내놓은 것. ★관련기사 4ㆍ8면
이날 민주당은 국회에서 오전10시부터 오후3시30분까지 5시간30분 동안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이 제안한 발효 후 3개월 내 ISD 재협상을 거부하며 당론인 선(先) ISD 폐기를 유지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당은 ISD 폐기ㆍ유보를 위한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서를 받아올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미 FTA에서 최소한 ISD는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라며 "FTA 발효 후 3개월 내에 재협상을 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구두약속은 당론변경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과 ISD 재협상 제안으로 한미 FTA 비준처리를 위한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는 청와대는 국회의 논의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짧은 논평을 내놓는 데 그쳤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께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국회의 논의를 조금 더 지켜보겠다. 의회민주정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민주당 의총에서 결론을 낸 조건은 사실상 기존 민주당의 주장에서 사실상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폐기ㆍ유보는 ISD를 협정문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를 바탕으로 재협상을 한다는 것은 아예 한미 FTA를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말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 의총은 74명 참석에 지도부를 제외하고 25~26명이 발언을 할 정도로 강경파와 협상파가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하지만 공개의총 등을 주장한 정동영 최고위원 등 강경파에 비밀투표로 당론변경을 추진한 협상파가 밀리며 끝이 났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장관급 문서에 대한 조건과 관련, 억지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ISD 문제를 대통령이 이 정도 얘기했으면 야권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한 것”이라며 “이 정도에서 비준에 응하지 않으면 이제까지의 반대가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 뿐이었다는 점을 야권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15일(현지시간) “한미 FTA가 발효된 뒤 ISD 문제를 비롯해 한국 측이 제기하는 이슈에 대해 협의(consult)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국내 FTA 비준 추진과정에서 핵심 정점으로 부상한 ISD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입장이 알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 통상당국자는 이날 “양국이 설립하기로 합의한 서비스ㆍ투자위원회에서 ISD를 포함해 서비스투자 분야의 모든 구체적인 현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