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일] <1332> 기번스 판결

경인운하가 뚫렸는데 인천시에서 지정한 독점업자만 운항할 수 있다고 치자. 화물운송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불만도 쌓인다. 180여년 전 허드슨강이 딱 이랬다. ‘증기선의 아버지’인 풀턴과 후원자인 리빙스턴에게 뉴욕이 부여한 증기선 독점권 탓이다. 증기선 수요가 늘어나며 뉴저지와 필라델피아 수운업자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발명가 풀턴의 명성과 국무장관까지 지낸 리빙스턴의 영향력이 합쳐진 독점권은 요지부동. 두 사람의 사망 직전에 권리를 사들인 애런 오그던도 독점권을 누렸다. 독점에 맞선 다른 수운업자들의 대안은 불법운행. 오그던은 본업보다 경쟁업체를 고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최대 라이벌은 토머스 기번스. 연방정부가 인가한 범선 운항권을 가진 기번스는 강심장인 밴더빌트를 선장으로 기용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참다 못한 오그던이 공권력을 동원하자 기번스는 1819년 독점 자체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 뉴욕법원에서 연패한 기번스는 대니얼 웹스터(훗날 국무장관에 올라 대권까지 넘봤던 변호사)와 전직 법무장관을 변호사로 고용, 소송을 대법원까지 몰고 갔다. 1824년 3월2일, 마셜 대법원장은 ‘주간 통상을 규제할 권한은 연방정부에 있을 뿐’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번스가 승리한지 2년 만에 허드슨강의 증기선은 6척에서 43척으로 늘어났다. 운임도 40%나 떨어졌다. 전국의 모든 강과 호수ㆍ항구에 대한 독점과 간섭도 사라졌다. 젊은 선장 밴더빌트는 미국 최고 갑부로 떠올랐다. 독점은 위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주정부가 유력인사에게 독점권을 베푸는 관행도 없어졌다. 지방의 이익을 보장하는 장벽이 무너진 결과는 ‘세계 최대 단일 공동시장’으로서 미국의 재탄생. 기번스 대 오그던 판결은 ‘물류산업의 해방선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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