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원전 안전에 1조 쏟아부었지만… 사이버 대응만 쏙 빠졌다

후쿠시마 사고후 수립 대책

쓰나미 방호벽 등에만 신경… 사이버공격 가능성엔 둔감

4개 파일·원전기술 설명 등 해킹 추정 그룹, 추가 공개

박근혜 대통령 "안보 심각한 상황"… 정치권도 한수원 연이은 질타

윤상직(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이 수립한 안전대책에 해킹이나 사이버 테러에 대비한 항목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 원전 안전성 개선을 위해 무려 56개 과제를 마련해 1조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정보보안과 관련한 대책은 전무했던 셈이다. 기존 마련한 대책만 맹신한 채 날로 발전하는 사이버공격 가능성에 그만큼 둔감했다는 얘기다.

23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후쿠시마 후속 안전조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수원은 2012년 2월 총 6개 분야 56건의 개선 과제를 마련했다.

안전점검 분야 46건과 자체 발굴 10건 등이다. 분야별로는 지진에 대한 구조물 안전성, 해일에 의한 구조물 안전성, 침수시 전력·냉각 계통, 중대사고 대응, 비상대응 및 비상진료체계, 고리1호기 및 장기가동 원전 등으로 분류돼 있다. 개선 대책은 올해 말까지 총 39건을 완료하고 내년에 나머지 17건을 마무리한다는 게 한수원의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국가중요시설인 원전의 설계도나 운영 매뉴얼 등의 중요 자료가 해커 등의 공격에 의해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을 가정한 사이버 대테러 대응책은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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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이후 56가지 개선대책 중에 사이버보안과 관련된 것은 전혀 없고 쓰나미 대비 방호벽 높이기 등 보여주기식 대책만 했다"며 "후쿠시마 이후 한수원은 비리와 담합, 그리고 내부 자료 유출 등 여러 사건이 터졌지만 위기 대응능력은 없고 사안이 잊혀지면 다시 답답한 복지부동 상태의 공기업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정보통신기반보호법에 근거해 공공시설은 국가정보원, 민간시설은 미래창조과학부, 국방시설은 국방부가 관리하는 정보 보안 대책을 추진해왔다. 각 부처가 산하 기관으로 하여금 매년 1회 정보 보안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고 이를 기관 스스로 자체 평가해 보고받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관 스스로 자체 점검하고 평가하는 식의 대책이 효과적이겠냐는 것이다. 보안업계의 한 관계자도 "산업부는 한수원과 한국전력·발전5개사·한국가스공사 등 11개 기관에 스스로 정보보안 취약점을 파악한 뒤 평가해 보고를 받고 산업부는 이를 국무총리실 산하 정보통신기반보호위원회에 이를 재차 보고한다"면서 "1차 보고가 허술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관 스스로 문제점을 찾더라도 관리·감독이 부실한 상황에서 이를 문제가 있다고 상급기관에 정확하게 보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수원이 해커에 의한 사이버공격 가능성이 제기되자 정치권도 한수원 등을 질타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가안보차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며 "사이버테러의 심각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아 원전뿐만 아니라 국가핵심시설 전반에 대한 사이버테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신속한 사건 규명과 함께 종합적인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부 부처와 한수원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수준의 안이한 자세"라며 인책론에 불을 지폈다.

한편 원전을 해킹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룹은 이날 다섯 번째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수원 사이버 대응훈련 아주 완벽하시네. 우리 자꾸 자극해서 어쩔려고"라는 조롱 글과 함께 원전 도면이 담긴 4개의 압축파일과 원전 기술을 설명한 기사의 인터넷주소(URL)를 공개했다. 한수원은 공개된 자료들이 "별거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이날 공개된 4개의 압축파일에는 고리 1·2호기와 월성 3·4호기의 도면으로 보이는 파일이 담겨 우려감도 키우고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계속되는 원전자료 공개로 미뤄 그가 상당량의 자료를 가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면서 "그의 주장대로 10만장의 자료가 공개된다면 이들을 조합해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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