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산별노조 지배구조 취약…개별노조 의견 집약 못해

금속노조, 중앙-지부지도부 역학관계도 정립안돼<br>기업 교섭 참여 유도위해선 신뢰부터 심어줘야



올해는 대규모 기업별노조들이 대거 산별노조로 전환한 후 사용자 측과 본격적인 교섭에 나서는 첫해다. 현재 산별노조 가운데 금속노조는 현대자동차ㆍ기아자동차 등 완성차업체들의 사측이 산별교섭에 불참한다는 이유로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오는 18일부터 총파업을 벌일 계획이다. 또 보건의료노조도 산별교섭 타결을 촉구하며 11일부터 간부 중심의 부분파업을 벌인 후 이달 중순 이후 전면 총파업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올초 진정 기미를 보이던 노사관계가 하반기 들어 산별교섭이 본격화하며 불안한 국면을 맞고 있다. 산별노조 시스템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이중파업과 불투명한 노조 지배구조가 문제=5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내에는 총 50개 산별노조에 모두 84만명의 산별노조원들이 가입해 있다. 이는 전체 노조원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치다. 특히 14만3,000여명의 조합원으로 최대 세력인 금속노조의 행보가 향후 산별노조 체제의 안착 여부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하지만 금속노조가 지난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저지 파업을 강행하면서 산별노조 체제하에서 전국 단위의 정치파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경영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게다가 현장 조합원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고 파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조합원이나 지부 차원의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경직된 의사결정 체계도 드러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현재 금속노조는 중앙 지도부와 현대차지부 지도부간 정치적 역학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라며 “금속노조의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산별노조의 안착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지부가 18일부터 시작될 금속노조의 산별파업에 일단 불참하기로 한 점도 이 같은 금속노조의 취약한 지배구조 문제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현대차지부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 노사간 지부교섭을 위한 첫 상견례가 12일 예정된 가운데 노사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중앙교섭 결렬에 따른 파업 찬반투표부터 실시하는 것은 시기상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별노조 유연한 투쟁전략 구사해야=산업혁명 이전에 산별노조가 생긴 외국의 경우 80년대 이후 단체교섭의 분권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최근에 와서야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 중심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세계 산별노조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식 산별노조 체제는 산별노조와 기업노조가 제각각 파업을 벌일 수 있어 파업 부담이 배로 늘어나는 문제점이 있다. 독일 금속노조의 경우 산별파업만 가능하고 기업 차원의 파업은 불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 산별노조와 기업노조가 모두 파업을 실행할 수 있다. 교섭 내용도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대기업이 산별교섭 참여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최재환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은 “노조 조직률이 감소하는 현실에서 산별노조가 조직의 세력확장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며 “산별교섭은 이중ㆍ삼중의 비경제적 구조인데다 산별교섭으로 인한 분규건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산별교섭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가 기업에 크게 불리할 게 없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금속노조는 FTA 정치파업 강행으로 사용자들의 산별노조에 대한 우려감을 증폭시켰다”며 “앞으로 금속노조는 산별교섭 구조와 의제 등을 사용자 측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서 산별교섭에 대한 사용자 측의 우려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도 “노동계는 산별노조가 정착되면 노동운동이 활성화된다고 믿고 있지만 이번 금속노조의 정치파업 등을 통해 국민의 신뢰는 물론 조합원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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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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