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며 한미 FTA 추진을 공표했던 노무현 대통령. 그는 이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6월 인터넷 포털 대표들과의 오찬에서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대원군의 쇄국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잘 몰랐다”며 한미 FTA 비판론을 ‘쇄국주의’로 몰아세웠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경도된 개방파 경제관료들에게 포위돼 초래된 결과라는 진보진영의 비판과 저항이 거세질 때도 특유의 뚝심으로 이를 돌파했다.
이런 신념은 시한을 앞두고 협상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한미 FTA가 우리 측 협상전문가들에 의한 게 아니라 ‘승부사 노무현’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놓고 ‘독불장군식’ ‘오기’라고 표현하지만 한미 FTA는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근성이 있었기 때문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정치적 손해가 가는 일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은 노무현밖에 없다고 믿었기에 결정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이 닿는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의지는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국정 운영의 객관적 틀에 따른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임기 중 국정 운영의 큰 흐름과 연계해 짚어볼 대목도 적지않다. 4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내내 노 대통령은 이른바 ‘노무현 디스카운트’라는 조어에 시달릴 정도로 보수층의 공격을 받아왔다. 경제계에서는 제대로 된 실적 없이 로드맵만 나열한다는 이유로 “빈 그릇이 요란하기만 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미 FTA는 ‘정치ㆍ경제적 반대파’로부터 들어왔던 이런 공격들을 차단할 수 있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에게 따라붙었던 ‘반미ㆍ좌파’라는 정체성 논란을 불식시킴과 동시에 실질적인 결과물로 드러난 임기 중 최대 업적이라고 내세울 결정적 무기를 만들어낸 셈이다.
노 대통령이 이처럼 이념적 사슬을 벗어던지고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했던 중도를 다시 껴안을 수 있다면 사법개혁안 등 미완의 과제 해결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평가와 별도로 한미 FTA가 노 대통령에게 준 직접적 선물은 무엇보다 임기 말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조만간 발의할 개헌안에 남북 정상회담까지 현실화할 경우 임기 말 힘을 발휘할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한미 FTA가 노 대통령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협상 결과의 대차대조표가 마이너스로 판명되고 국회 비준에 실패할 경우 한미 FTA는 노 대통령에게 임기 중 가장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