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에 익숙한 사람은 실패할 위험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실패를 자주 경험한 사람은 ‘머피의 법칙’의 희생양일 확률이 높다. 그만큼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불확실성을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고 아우성이다. 지난해에 민간 부문을 안심시키려던 정부마저도 이미 2009년도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낮춰 잡았다.
기술경쟁력 확보 절호의 기회
10년 전 IMF 외환위기에 견주어 상황이 더 나쁘다는 지적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오히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래서 이번 경제위기가 우리 기업들에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달 개최된 ‘민간 연구개발(R&D) 투자촉진 라운드테이블’에서도 지금과 같은 위기가 오히려 기술혁신을 통한 미래의 기술경쟁력 확보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의 ‘한 발 앞선 R&D 투자로 두 발 빠른 기술강국론’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당시 우리 기업들은 급격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R&D와 인재투자에 소홀했다. 심지어 R&D 인력을 가장 많이 축소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선진 기업들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사회적으로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지금은 자산이 돼 다행히 많은 기업들이 경영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올해 R&D 투자 규모를 소폭이나마 늘려 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R&D 연구인력 등 핵심인재 확보에는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IMF 사태에 비하면 놀라운 인식의 변화다.
지식경제부와 산업기술재단이 주최한 포럼(위기를 기회로:기업의 전략과 R&D)에서도 토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이 R&D와 인재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인재와 R&D에 투자해 불황을 극복한 기업들의 사례도 많이 소개됐다.
캐논이 디지털카메라라는 세계적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고 눈부신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1990년대 장기불황 속의 과감한 R&D 투자였다고 한다. 캐논은 R&D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의하고 경제위기 속에서도 매출의 7~8%를 R&D에 투자했다. 그 결과 1999년부터 10년간 연평균 매출 5.5%, 순이익률 17.9%의 눈부신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세계적 유리 기업인 코닝사도 2001년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주력인 광섬유 사업이 큰 위기를 맞았으나 그 기간에도 R&D 투자는 오히려 매출액의 15%까지 늘렸고 그 결과 2005년부터 4년간 순이익이 700% 이상 증가했다. 포스코 역시 외환위기 당시 국내 철강수요가 40%씩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연간 1,000억원씩을 투자해 파이닉스 공법 개발에 도전, 15년에 걸친 R&D 투자 끝에 지지난해 상용화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생산원가를 20% 낮추고 에너지 소비도 10% 낮추는 데 성공했다.
R&D·인재에 과감한 투자를
운동선수에게는 경기가 없는 겨울시즌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좋은 기회다. 소위 동계훈련이라고 하는 이 시기를 잘 활용해야 선수 개개인의 실력도 향상되고 소속팀의 좋은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에 있어 설비투자, R&D 투자, 해외시장개척 등은 운동경기로 치면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기침체기의 동계훈련이다. 일자리 나누기, 고통분담, 구조조정 등 수비력 강화훈련도 중요하지만 수비력 강화만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는 없다. R&D와 인재에 대한 투자는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동력이자 불확실한 현재에서 미래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혹독한 동계훈련을 이겨내고 다음 시즌 승리를 꿈꾸는 운동선수처럼 글로벌 경기침체 시기에 R&D와 핵심인재에 과감히 투자하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과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