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발자취] 재무부등 요직 두루거친 경제통

미래지향적 정책수립으로 유명

안공혁(67) 손해보험협회 회장은 재무부 증권보험국장ㆍ차관보와 해운항만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지난 63년 제1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총무과 사무관으로 재무부에 몸을 담으면서 강직한 성품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73년 산업은행 자회사로 산업리스를 설립하도록 해 국내에 처음 리스산업이 도입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한국투자신탁 설립으로 채권시장이 한층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재무부 증권보험국장 시절에는 할인할증제도를 도입, 자동차보험제도를 대폭 개선했고 82년에는 금융실명제 초안작업을 맡아 89년까지 골격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일단 맡으면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게 안 회장의 고집이고 업무 스타일. 재무부 병아리 사무관 시절의 일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외부로 나가는 문서를 원본과 대조해 장관 직인을 찍어주는 일을 맡고 있던 안 회장은 한자 용어를 쉽게 풀어 쓴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장관 직인을 찍어주지 못하겠다고 한 것. 상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독자 시행(?)한 이 개선작업으로 “신참 사무관이 장관 명의의 문서를 고치라 마라 한다”며 재무부 전체가 시끄러웠지만 윗사람들은 “패기 있는 젊은 사무관이 들어왔다“며 안 회장을 눈여겨보게 됐다. 안 회장은 10년 앞을 내다보고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급변하는 시장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임기응변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며 10년이나 20년 후의 큰 목표를 정해놓고 움직여야 일시적으로 정책방향이 흔들리더라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지론이다. 좌우명은 ‘성실과 정도’.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 좌우명은 40여년을 정부와 기업에서 올곧으면서도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갖게 했으며, 특히 머무르는 곳마다 새로운 정책과 업무를 발굴하고 기존의 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앞장서게 했다. 재무부 시절 등산부를 조직한 등산예찬론자이며 여행광이기도 하다. 손보협회 회장으로 선임될 당시도 영국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는 아들과 한달 일정으로 손수 자동차를 몰고 민박집을 돌며 유럽을 일주하던 중이었다. 그의 청년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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