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자의 눈] 재벌과 전경련

손동영 산업부 기자『말은 맞지만 당신이 해선 안될 말이었다』 「실패한 경영진은 퇴진하라」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보고서에 12일 내내 재계는 벌집쑤신 듯 했다. 정부관계자나 시민단체가 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얘기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는 오직 하나, 재벌총수의 방패막이쯤으로 여겨진 전국경제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성자동차로 인해 발생한 국민경제적 손해가 7조원대에 이른다」는 분석이 쏟아지는 시점에서 「실패 경영진 퇴진」은 무척 민감한 문제였다. 당장 손병두(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내부 의견조율이 안된 의견이다』 『전경련의 기본입장과 다르다』고 해명하느라 바빴고 전날까지 『있는 그대로 소개해 달라』고 자신만만했던 한경연은 『진의가 왜곡됐다』고 발을 뺐다. 한쪽에선 『실패한 경영진은 전문경영인을 뜻한다. 총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는 해명도 나왔다. 그러나 『재벌총수는 아무리 경영에 실패해도 퇴진하면 안된다는 뜻이냐』는 물음엔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사실 지난 9일 한경연이 「향후 대기업 환경변화와 대응과제」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을 때 논의의 촛점은 「포스트 재벌」이었다. 한경연은 『지배구조·재무구조·사업구조가 급변, 이젠 과거의 선단식·그룹식 경영이 불가능해졌다』는 전제 아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 『정부측 보고서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보고서의 시각이 그만큼 신선했기 때문이다. 경영에 실패했으면 전문경영인이든, 재벌총수든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 한경연 관계자들은 12일 전경련의 대응을 보면서 「당연한 말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를 절감하는 눈치다. 마침 이날 아침 보도를 접한 전경련의 한 직원은 『우리도 이젠 뭔가 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에 부푼 마음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그런데 출근을 해서 분위기파악을 끝낸 뒤 내뱉은 첫마디는 이 한마디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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