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양말시대 개척 「싹스탑」 돌풍/89년 영 방문때 착상 개성세대 공략 적중/위탁판매 방식으로 체인점 개설난 극복/91년 창업 1천여종 판매 올 매출액 120억「양말도 옷이다.」
김현인 (주)제미유통 사장(46)이 「싹스탑」 브랜드의 패션양말사업을 시작하면서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김사장은 양말 한 품목으로 지난해 9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는 목표 1백2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김 사장이 양말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제조는 전문 하청업체들이 담당한다.
김 사장이 하는 일은 패션양말을 디자인하고 유통망을 구축, 판매하는 것뿐이다.
(주)제미유통은 현재 전국에 92개 「싹스탑」 체인점을 갖추고 1천여종의 패션양말을 판매하고 있다. 켤레당 가격은 2천5백∼5천원으로 일반 양말제품보다 다소 비싸지만 이제는 양말도 개성에 따라 골라서 구입하는 시대흐름과 맞아 떨어지면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종근당 등에 근무했던 김 사장은 79년 형인 현우씨가 아디다스 스포츠용품업체인 제우교역을 설립하자 여기로 자리를 옮겼다. 전공은 화학이었지만 사업의 승패가 제품판매에서 판가름난다는 점을 중시, 마케팅을 맡아 제우교역의 급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이 제우교역의 영업문제로 89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색다른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양말 전문점이었다.
김 사장은 이 양말 전문점을 둘러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패션의 마지막은 양말이다!』 스포츠용품의 마케팅을 맡으면서 패션의 중요성은 이미 온몸으로 체득한 터였다.
김 사장은 국내에서 패션양말 사업을 펼치기로 하고 시장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발을 천시하는 관습으로 인해 양말에까지 패션개념을 도입하는데는 어려움이 적지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신세대와 맞벌이 부부의 등장으로 각자가 퇴근하면서 양말전문점에 들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양말을 구입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또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흐름으로 볼 때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의류와 양말이 연계되는 패션양말 쪽으로 유행이 흘러갈 것은 명확해보였다.
김 사장은 2년이 지난 91년말 5억원의 사업자금을 마련, (주)제미유통을 설립하고 패션양말 사업에 도전했다. 고유브랜드로 「싹스탑」을 고안해내고 각종 패션양말을 디자인, 하청업체를 통해 생산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판매였다. 체인점 모집에 나섰지만 모두가 『시장에 가면 1천원짜리 양말이 수두룩한데 과연 3천원짜리 양말이 팔리겠느냐』며 패션양말사업의 가능성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김 사장은 『운동화도 옛날에는 시장에서 구입했지만 지금은 전문매장에서 고르지 않느냐』며 양말 역시 이제는 전문점 시대가 열린다고 설득했지만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양말 전문점을 하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김 사장은 위험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체인점의 운영방식을 위탁판매로 전환했다. 즉 점주는 매장만 마련하고 양말제품은 모두 본사인 제미유통에서 제공, 판매액의 70%만을 본사에 입금토록 하는 방식이었다.
위탁판매형식으로 재고의 부담을 없앤 후 서울 신촌에 「싹스탑」 1호점이 개설됐다. 월간 판매액은 예상을 뒤엎고 3천만원에 달했다. 체인점주로서는 매달 9백만원을 판매수익으로 챙겨 임대료와 매장 운영비를 빼고도 5백만원 이상의 돈이 수중에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대리점을 하겠다고 다투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싹스탑」 대리점은 3∼4평의 공간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5천만원 정도면 충분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었다.
체인점이 늘어나면서 제미유통의 양말 판매액도 급증, 올들어서는 이미 1백억원선을 넘어섰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다들 필요한 제품을 사업아이템으로 선택한 것이 들어맞았다고 봅니다. 고가품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이제는 시장제품과 별 가격차이가 없는 저가품 쪽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김 사장은 내년말까지 대리점을 3백개로 늘려 양말 한가지 품목으로 연간 매출액 5백억원을 달성하겠다며 의욕을 내보였다.<최원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