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마르크스, 지멜, 드러커

1918년 사망한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생전에는 사회학계에서 소외당했다. 당시의 주류 사회학자들과 달리 지멜은 사회를 수많은 개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연결된 상태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적 관점으로 사회를 파악하려 한 지멜의 시도는 1980년대 이후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됐고 그는 지금 막스 베버와 비슷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지멜의 최대 연구주제는 돈과 노동이었다. 1900년 발간된 지멜의 역작 ‘돈의 철학’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다.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하게 되면 인간의 인품은 상실된다. 예를 들면 우유배달부, 슈퍼마켓 점원, 은행원의 경우 그들이 우리들과 맺게 되는 인간관계란 돈을 매개로 이뤄지며 그 외 다른 인간관계는 모두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새벽 일찍 우유를 배달해주는 아주머니의 고마움, 고달픈 아르바이트를 하는 착한 대학생, 돈을 빌려주는 자의 너그러운 인품에 이끌려 그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화폐의 교환기능 덕분에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런 생각은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서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인간사회는 동정심이 없어도 존속할 수 있지만 개개인의 이기주의적인 이해관계에 기초를 둔 정의(正義)가 없이는 존속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우리들이 푸줏간ㆍ양조장ㆍ빵가게에서 고기ㆍ술ㆍ빵을 살 때는 푸줏간과 양조장과 빵가게 주인들이 온정과 동정심과 선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물질적인 이해관계, 즉 그들의 돈벌이를 우리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거래를 한다. 그들은 인정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애심(self-love)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상거래를 하고 있을 뿐이다.” 화폐경제 이전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수량적인 면에서는 소규모였고 질적인 면에서는 인정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어느 특정 인과의 인간관계를 다른 어떤 관계로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화폐경제사회가 도래하면서 특정인을 향한 온정이 넘치는 인간관계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화폐를 매개로 모든 인간에게 균일하게 적용되는 차가운 인간관계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 지멜의 통찰이다. 피터 드러커의 출발은 경제학자였다. 1939년 최초의 저서 ‘경제인의 종말’로 드러커는 미국의 경제학회와 정치학회의 회원이 됐다. 그러나 1950년대 초 뉴욕대학교에서 드러커는 경영학을 가르치게 되는데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루트비히 에들러 폰 미제스는 거시적 경제학에서 수준 낮은 미시적 경영학으로 전향한 드러커를 매우 힐난했다. 그때 드러커는 ‘인간의 행복은 물질의 소비 수준의 증가’에 달렸고 물질의 생산을 증가하는 주체는 기업이므로 자신은 기업 경영을 연구한다고 대답했다. 지금 드러커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때의 고객은 지멜이 말하는 모든 인간에게 균일하게 적용되는 차가운 인간관계의 고객이지 따뜻한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드러커는 젊은 시절 런던의 베른하임백화점 사주에게서 “물건의 가격은 옆 가게보다 단 10센트라도 싸게 하고 물건이 잘 보이도록 진열해야 한다”는 말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우리 속담에 ‘아지매 떡도 싸야 사먹는다’는 논리와 같다. 드러커에 따르면 경영학은 인간의 소비 수준을 향상시키는 학문이다. 현대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이런 드러커를 ‘현대 마케팅의 조부’라고 칭송했다. 1818년에 태어난 마르크스는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진 자의 재산을 빼앗아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방법을 고안했다. 1858년에 태어난 지멜은 “돈을 소유한 인간은 노동과 투쟁의 단계를 벗어나 문화적인 것과 삶의 양식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1909년에 태어난 드러커는 근로자가 돈을 벌고 부유해지는 방법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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