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달리 27개 회원국 이해관계 복잡<br>정부 관계자 "국내 지나친 낙관론 경계"<br>車최대 쟁점 부상속 개성공단 등도 윤곽<br>양측 양허안 중심 치밀한 탐색전 예고<br>3차 협상부터 본격적 줄다리기 펼칠듯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과 비교해 간단하지 않고 독특한 면이 있는데도 내용상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
“27개 회원국 간의 소득수준 및 산업구조 등의 차이로 인해 서비스시장 개방은 물론 관세양허 품목, 양허 폭과 시기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도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과 EU의 FTA 2차 협상이 이번주 시작되지만 정부 측의 일반적 평가와 달리 이상하리만큼 협상의 조기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한ㆍEU 협상에서는 한미 FTA에서 쟁점이 됐던 몇몇 분야(국가ㆍ투자자 제소 등)가 협상대상에서 제외됐고 상대가 뜨거운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미국이 아니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에 참여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협상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EU는 미국과는 또 다른 면이 있고 양허안 초안을 받아본 결과 결코 만만하지 않다”며 “난관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일 교환된 상품 양허안에서는 서로의 핵심 품목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달라 초반부터 적지않은 진통도 예고하고 있다.
◇난이도 드러날 2차 협상=양허안 초안을 교환했지만 양측은 여전히 속내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물론 일부 상품이나 서비스 등에 대한 개방안을 교환해 2차 협상부터 본격적인 의미의 협상이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양측은 2차 협상까지는 치밀한 탐색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2차 협상을 통해 한ㆍEU FTA의 난이도가 드러나고 이후 협상전략을 마련한 양국은 3차부터 본격적인 협상을 벌일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EU는 모든 상품에 대한 관세와 쿼터를 7년 이내에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농산물뿐 아니라 공산품과 서비스 등 모든 분야가 포함돼 있다. 공격적인 전술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EU는 지역협정을 체결한 것만 20개를 넘어설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다”며 “특히 협상단에는 국제통상통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진이 다수 포진해 있어 협상 하나하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토로했다. 2차 협상의 경우 우리 측은 130명의 대표단을 파견하지만 EU는 50명의 협상단만을 파견한 것도 이 같은 이유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자동차, 2차부터 가장 큰 쟁점=국내총생산(GDP) 14조5,000억달러, 인구 4억9,000만명으로 세계 최대의 단일경제권인 EU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2%선에서 머물고 있다. 한ㆍEU FTA로 마(魔)의 3%를 넘어야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여기서 나온다. 때문인지 이번에도 협상의 중심에는 공산품이 자리잡는다. 지난해 대(對)EU 무역흑자 180억달러의 대부분이 자동차ㆍ선박 등에서 나왔다. EU의 경우 공산품 평균 관세율이 4.2%로 미국(3.7%)보다 높다. 관세철폐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이다.
공산품 중에서는 자동차가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을 것 같다. 자동차의 관세철폐 시기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벌써부터 치열하다. EU는 모든 상품의 관세를 7년 내 100% 철폐하고 즉시철폐 및 3년 내 철폐 비율을 수입액 기준 80%로 잡는 등 공세적 개방안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유독 자동차만은 최대한 늦추려 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있다. EU는 자동차 수입관세율이 10%에 이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만 “자동차의 경우 확실한 의도를 알아봐야 한다”며 “6일 밝힌 양허안이 진심인지, 아니면 전략인지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등 여타 쟁점도 윤곽 드러날 듯=원산지 분야의 최대 쟁점인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는 2차부터 부각될 전망이다. 김한수 한ㆍEU FTA 우리측 수석대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낙관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비관세 장벽 분야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환경과 안전 등의 분야에 우리 측이 느끼는 EU의 비관세 장벽이 만만하지 않다. 대표적인 게 ‘신화학물질 관리제(REACH)’다. 6월부터 발효된 이 제도는 EU 지역으로 수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1톤 이상의 모든 화학물질과 완제품 내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정보를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위해성 정보 사전등록에만 2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EU의 공세도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U는 명실상부하게 문예ㆍ미디어ㆍ과학기술ㆍ디자인ㆍ명품브랜드 등의 영역에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김 대표는 EU 측에 맞서 “▦건축사ㆍ기술사 등의 상호자격 인정 ▦금융기관 고위임원의 국적제한 철폐 ▦대졸 연수생의 현지연수를 위한 이동허용 등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미국과 FTA의 비준만 남은 상태고, 또 EU는 미국과 가장 경쟁하는 국가 중 하나”라며 “한미 FTA의 협상 결과, 그리고 비준 일정 등을 한ㆍEU FTA 협상 과정에서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우리 측에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