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무한경쟁과 경영시장/이헌재 조세연구원자문위원(송현칼럼)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기업간 무한경쟁은 끊임없이 희생자를 낳고 있다. 변화와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는 생존의 경쟁원칙이 자연세계나 인간세계나 구별없이 냉엄하게 지켜지고 있다.몇년 전 법정관리로 막을 내린 중견재벌의 경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벌의 회장이었던 K씨는 창업자의 장남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 실패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동부지역의 유명대학을 졸업한다. 그후 부친 회사의 뉴욕지사에서 다소 경험을 쌓은 다음에 MBA과정을 이수하고 귀국, 20대의 나이에 부친 회사의 기획실장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경영권 상속이 문제 그후 10년간 국가경제의 성장추세에 따라 회사도 크게 성장한다. K씨도 사업경험을 쌓으면서 이사와 사장을 거쳐 부회장으로 올라간다. K씨의 경영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던 부친은 K씨에게 마침내 경영권을 이양하고 은퇴한다. 동시에 K씨는 주력업종의 경쟁력격화와 사양산업화라는 여건에 부딪친다. 결국 난관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좌초하고 만다. 사실 그 과정에서 K씨의 경영능력에는 수없이 문제점이 제기되어왔다. 겉보기에 화려한 그의 경영능력은 보다 좋은 교육환경, 특수신분에 의한 조직내 유리한 지위확보, 기업관료주의, 고급정보에 대한 용이한 접근과 대인접촉에 뒷받침된 유사환경에 불과할지 모른다. 의제된 환경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과장된 유사경쟁력을 정말로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마치 명문귀족출신의 무능한 장군을 의지하고 전투에 임하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 전투에서 패하고 만 역사적 교훈은 적지 않다. 사파리는 자연이 아니다. 확대된 동물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의제환경이자 유사자연일 뿐이다. 때문에 사파리 체제하에서는 동물들의 종간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과잉번식한 동물들을 살상해야 하는 인위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는 가상현실을 보고서 실제현실이라고 착각하듯이 의제환경과 유사체제를 보고서 진짜인 양 생각한다. 경쟁적인 실제상황에서 검증되지 않고 제한된 환경에서 연출된 경영능력을 근거로 한 경영권의 상실은 대표적인 사례다. 비단 이러한 현상이 기업내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돼 있다. 재단이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학총장을 선출하거나, 외부입김으로 은행장이 내부선임되는 관행도 여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왜 현실세계에서 유사경쟁력의 환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는 다름아닌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경쟁체제를 왜곡한다. 왜곡된 경쟁체제에는 항상 초과리익이 존재한다. 비경쟁적인 시스템에 내재하는 렌트(Rent)가 그것이다. ○국민경제만 희생 아무래도 창업주의 아들로서 중요지위를 선점한 사람은 조직내 같은 또래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인위적으로 유리하게 형성된 출발점과 독점적 지위로 본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경쟁력은 얼마든지 부풀려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울타리가 제거되고 난 이후에 벌어지게 될 실제상황이다. 같은 경쟁조건에 처하게 되면 이내 경쟁력을 잃고 만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조직이 비경쟁체제에 의해 보호받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욱 확대된다. 이런 체제에서는 경영권 시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M&A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무능한 경영진은 그대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한다. 비경쟁적인 유사환경이 존속되는 한 이들은 절대로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은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도전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언젠가 유사환경의 환상은 깨어진다. 이로 인해 국민경제는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



이헌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