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지난 7일 발표한 8천억원의 사회헌납은 한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출연이 되겠지만 이를 모두 한 곳에 몰아줘도 미국 60위권 재단 규모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행 법규나 헌납재산의 용도에 관한 다양한 요구를 감안할 때 헌납된 8천억원은 '고만고만하게' 작은 여러 개의 재단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19일 밝혔다.
미국 비정부기구(NGO) '파운데이션 센터'에 따르면 미국 최대의 재단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설립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2004년말 현재 이 재단의 자산총액은 무려 288억달러(약 28조원)로 삼성그룹이 헌납하겠다고 밝힌 금액의 35배에 달한다.
삼성이 헌납한 8천억원을 모두 넘겨받아 재단을 설립할 경우에도 이 재단의 자산은 미국 14위인 '록펠러 재단'(32억달러)의 약 4분의 1, 24위인 '카네기 코퍼레이션'(19억달러)의 40% 남짓에 불과하게 된다.
8천억원은 미국 60위 규모로 보스턴시의 지역재단인 '바 파운데이션' (8억300만달러)과 유사한 자산규모가 된다.
미국의 재단들은 대개 이처럼 막대한 자산을 바탕으로 교육에서 복지, 문화사업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경우 미국내 학교 정보기술(IT) 교육 지원에서아프리카 전염병 퇴치에 이르기까지 관여하지 않는 국내외 현안이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이와 같은 미국의 상황을 들어 삼성의 헌납재산도 한곳에 몰아 단일재단으로 설립함으로써 운영의 효율을 기하되 다양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기업 사회공헌 전문가인 양용희 호서대 교수는 "재단을 특정부처에 등록해 그 부처의 소관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현행 체계를 감안할 때 한 재단이 이질적인여러 사업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자산이 4천500억원으로 삼성이 헌납하겠다고 밝힌 재산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의 경우 '장학사업'을 위해 설립된만큼 설사 정관을 변경하거나 해산 후 재설립하더라도 원래의 사업목적을 근본적으로변경하거나 전혀 성격이 다른 사업을 추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극화 해소나 사회복지 등 헌납재산의 용도에 관해 제기되는 여러 요구를 무시하고 8천억원을 모두 장학사업에만 몰아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양 교수는 "따라서 8천억원의 자산이 각기 사업목적이 다른 몇개의 재단에 분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헌납재산을 단일재단이나 복수의 재단에 나눠주는 방안 가운데 어느쪽을 택할 지를 포함해 구체적인 운영방안은 모두 국가와 사회의 논의결과를 따르겠다는 것이 삼성의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