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메르스발 기준금리 인하] 가계빚 1100조 넘는데 손놓은 TF… "금융위가 대출관리 주도를"

■ 가계부채 부채질 우려

관리협 별다른 대책 없어 "역할 재검토 필요" 목소리

부동산서 가계부채로 정책 무게중심 옮겨야

금융당국에 힘실어주고 DTI 강화 등 미세조정을

11일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한 행사장에 임종룡(왼쪽)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나란히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11일 기준금리 인하로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가계부채 관리에 비상등마저 켜졌다. 이번 조치가 폭증세인 가계부채에 대형 엔진을 달아주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하지만 1%대로 기준금리를 내렸던 지난 3월 결성된 범정부 태스크포스(TF)인 가계부채관리협의체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혹평도 적지 않다. 애초부터 '경기부양을 위한 미시관리'로 협의체의 역할을 제한하면서 헛바퀴만 굴리는 느낌이다. 물론 협의체의 고충도 크다. '쇠뿔(가계부채)'을 바로잡으려다 '빈사 상태의 소(한국 경제)'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내수가 쑥대밭이 돼 정책 수단이 더 옹색해진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최대 시스템 리스크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나 전체 규모를 고려하면 부채관리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맥락에서 협의체 내에서 금융위원회의 위상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필요하면 금융위가 협의체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위가 주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마이크로하게 손보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제는 정책의 무게중심을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서 가계대출 관리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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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까지 차오른 위기감에도 대책은 없어=가계부채는 지난 4월 초 이미 1,100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비수기로 분류되는 4월에 10조원, 5월에는 7조원 넘는 대출이 늘었다. 시장에서는 대출 증가세가 너무 가파르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협의체는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거래 증가에 따른 것"이라며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오는 7월 말로 일몰이 끝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DTI의 규제완화를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한 것도 협의체다. 현재 금융감독원이 이와 관련한 이의신청을 받고 있는데 이변이 없는 한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협의체는 한결같이 가계부채 증가를 용인하는 스탠스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례적인 대출증가에다 기준금리가 3월에 이어 또 내린 상황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은 문제다. 그렇다고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꼬박 두 번씩 회의는 소집되고 있다. 협의체는 "실물경제를 고려해 미시적, 부분적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말하지만 연체율 관리나 다중채무자 점검 정도에 그쳐 새삼스러울 게 없다. 협의체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지금은 괜찮은 듯 보여도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 부실이 터질 수밖에 없는데 기획재정부가 협의체를 좌지우지해서인지 상황 판단이 안이하다"며 "금융당국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실장도 "정부 판단은 나중에 시중금리가 오르더라도 급격히 상승하지 않고 경기가 완만히 회복된다는 가정 아래서만 유효하다"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이 70%나 된다는 점에서 대출증가를 마냥 놔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책 최우선 목표, 대출관리 돼야…DTI 미세조정 가능성=전문가들은 대출을 더 빡빡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극약처방인 대출총량규제보다는 미세조정에 방점이 찍힌다. 그 대상은 DTI 규제강화, 대출조건에 따른 유무형의 페널티 부과 등으로 초점이 모인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DTI의 경우 차주의 '예상소득 인정기간'을 현재의 60세에서 70세로 대폭 올리면 대출을 옥죄는 효과가 생긴다"고 조언했다.

이자만 내는 대출, 변동금리 대출을 줄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자만 갚는 대출에 대해서는 원리금 대출과 달리 LTV·DTI를 차등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도 "변동금리 대출이 많은 은행에 대해서는 이른바 '거시경제 분담금(가칭)'을 물게 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견해들은 금융당국의 역할 강화를 전제로 깔고 있다. 한 전직 관료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재부가 목표로 했던 부동산 경기 부양이 상당 부분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가계대출 관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급격한 정책 방향 수정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위가 협의체에서 정책을 주도한다고) 경기가 식을 것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금리 인상기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후약방문 격으로 서민에 대한 부채탕감 등 반시장적 조치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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