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3월 16일] 시골뜨기 학생을 국제화시킨 신부님

"(따르릉… 따르릉…)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우 레몬도입니다. 저를 기억하실 수 있을까요. 35년 전 포천성당 미사 때 복사를 섰던…." "오오… ?칵납니다. 레이문도. 오래?인데 정말 판카워요." 며칠 전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제주도에 머물고 계시다는 황 프란체스카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다. 황 신부님은 지금으로부터 꼭 35년 전인 지난 1975년, 포천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해오신 호주 출신 신부님이다. 나는 그때 초등학교 3학년생으로 복사를 섰다. 복사는 신부님의 미사 집전을 돕는 어린이를 말한다. 황 신부님은 당시 40대 중반쯤의 나이였고 항상 구수한 파이프 담배를 즐기는 황금빛 머리카락의 미남 신부님이었다. 마치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을 연상시키는…. 며칠 전 지역구인 포천에 갔다가 황 신부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몇 년 전 은퇴하셨고 지금은 제주도의 한적한 곳에서 은퇴한 신부님들과 함께 노년을 보내고 계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황 신부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나에게 잊지 못할 은인이다. 성탄절이 되면 장갑이나 운동화를 선물로 주셨고 중학교에 입학하자 가톨릭교구의 장학금을 주선해주셨다. 가난했던 그 시절 노란 봉투에 담긴 성당 장학금으로 매 학기마다 참고서를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신부님은 영어 선생님 역할도 돼주셨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학생과 영어 펜팔을 했는데 해석이 안 되는 구어체 표현이 많았다. 그때마다 신부님께 가져가면 친철하게 해석해주셨고 다른 표현법도 함께 일러주셨다. 황 신부님은 시골뜨기 어린 학생인 내게 서방세계의 문물과 언어를 가르쳐주신 선각자라고나 할까…. 중학교 시절 난 걱정거리가 있거나 우울할 때면 어둑어둑한 텅 빈 성당에서 기도를 했다. 성당 뜰에서 마주치면 항상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시는 신부님이 좋았다. 과묵한 분이었지만 늘 미소를 머금고 있던 황 신부님…. 신부님은 1956년 고국인 지구 반대편의 호주에서 우리나라에 오신 후 지금까지 50여년간 사목활동을 하셨다. 그동안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이국땅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신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국제사회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지난해에 비해 19.4% 늘어난 4,270억원으로 증액했다. 가난한 나라에 경제적 도움의 규모를 늘린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쳐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황 신부님과 같은 훌륭한 인력을 많이 배출해 파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리라. 올해 팔십이 넘으셨을 황 신부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다.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황신부님을 찾아 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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