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교역조건 또 사상최악…수출 늘어도 번 돈 줄어

■한은 '교역조건 동향'

우리나라 교역조건이 사상 최악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수입물가는 크게 오른 반면 수출물가는 가격경쟁 격화로 많이 올리지 못한 탓이다. 더욱이 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목의 가격이 하락 중이어서 하반기 교역조건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ㆍ4분기 중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 동향’에 따르면 지난 분기 순상품교역조건지수(2000년=100)는 84.6으로 전 분기에 비해 2.2% 하락했다. 전년동기와 비교하면 5.5%나 떨어졌다. 다만 수출물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총물량을 기준으로 한 소득교역조건지수는 140.4로 전 분기 대비 5.0% 상승했다. 가격이 떨어져 수출이 위축받는 지경이 되자 기업들이 물량공세로 버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순상품 교역조건이 악화된 것은 수출단가지수가 90.0으로 전 분기 대비 1.5%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수입단가지수가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3.8%나 올랐기 때문이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단가지수를 수입단가지수로 나눠 100을 곱한 수치로 1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을 뜻한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수는 2001년 95.5, 2002년 95.0에 이어 지난해 89.0 등으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교역조건 악화는 경제 전반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기업들은 같은 양을 수출해도 순익이 줄어들고 국내소비 측면에서도 수입물가 상승에 따라 소비여력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다. 또 경제가 성장해도 실질국민소득 증가는 그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 2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5%를 기록한 반면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GNI)은 4.6% 증가에 그친 것도 소득교역 조건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교역조건 악화가 장기화할 경우 성장잠재력 자체를 갉아먹는 것은 물론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우리 경제는 90년 중반 이후 반도체 등 주력품목의 수출단가 폭락→수출급감,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발생→해외차입 증가→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끝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쓰린 경험이 있다. 문제는 하반기 전망이 더욱 암울하다는 점이다. 반도체ㆍLCD 등 우리나라의 주력 IT제품 가격 하락세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기준 배럴당 50달러를 넘보고 있는 상황도 교역조건 악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2ㆍ4분기 교역조건지수는 반도체 등 수출 주력상품의 가격 상승으로 그나마 선전한 편”이라며 “하반기에는 고유가와 반도체 국제가격 하락 등으로 다시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반기 교역조건 악화 정도가 한은의 예상대로 상반기보다 훨씬 심각할 경우 경제성장과 소득증가의 괴리는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경제성장률이 하반기에 완만히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GNI 증가율은 급격히 하락해 4ㆍ4분기에는 2%대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교역조건이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증가율의 격차는 1ㆍ4분기보다 확대될 것”이라며 “경제성장률이 5.2%를 달성하는 경우라도 소득증가율은 4%대 초반 정도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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