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헌혈도 국방 의무?


"전 장병 연 1회 이상 헌혈 참여정책을 시행해 헌혈 장병 수를 연간 24만명 이상 늘리겠다."

보건복지부와 국방부·대한적십자사(한적)가 16일 맺을 '헌혈 혈액 보관검체 군 전사자 등 신원확인 연계시스템 구축' 협약에 담긴 목표다.


눈을 의심했다. 이제는 국방의 의무에 노골적으로 헌혈의 의무까지 더하는구나 싶었다.

군 전사·순직자의 신원을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혈액에서 채취한 DNA 확보가 필수다. 군은 장병들의 DNA를 관리하기 위해 10년간 200억원 이상의 예산과 직원 20명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적은 헌혈자의 피 일부(5㏄)를 10년간 보관한다. 나중에 수혈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기 위해서다. 이 '보관검체'로 DNA 확인이 가능하다는 데서 이번 정책이 비롯됐다.

모든 장병이 헌혈하고 한적이 DNA 정보를 군에 제공하면 군은 예산을 아끼고 헌혈자도 대폭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싸하지만 핵심이 빠졌다.


신원확인에 필요한 혈액 5㏄ 때문에 400㏄ 헌혈을 강요당하는 장병들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군은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는 만큼 이번 정책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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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일까. 주변 예비역에게 한번만 물어보자. 기꺼이 헌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지휘관이 시키는 대로 연병장에 주차된 헌혈차 앞에 차례로 올라타 팔을 내밀고 있다.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12년 군인 36만3,000명이 헌혈했다. 둘 중에 한 명꼴이다. 반면 전체 헌혈자는 272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5%에 불과하다. 자발적으로 헌혈하던 사람들이 군복을 벗자마자 마음이 바뀐 것일까.

군은 지금보다 헌혈자를 24만명 늘리겠다는데 얼마나 더 많은 장병이 자발성을 강요당해야 할지 우려된다.

대안이 없지도 않다. 한적이 조건 없이 장병 DNA 관리업무를 도우면 된다. 또 학창시절 헌혈해본 사병의 DNA는 이미 10년간 보관되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는 20대 중반 이전에 전역하므로 굳이 피를 뽑지 않아도 된다.

예산을 아끼고 헌혈을 늘리는 것은 좋지만 방법이 틀렸다. 아무리 좋은 행위라도 개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군대의 경우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만큼 장병들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더욱 보장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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