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그 집'은 마냥 평범해 보인다. 무뚝뚝한 아빠와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 별말 없는 아들.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식사하는 모습은 여느 집의 그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가족이 애써 지키려던 불안한 평온(?)은 그러나 이웃 새댁이 이사 떡을 돌리러 찾아오며 이내 무너져내린다. 이방인의 등장에 긴장하는 아버지와 겁에 질려 다락방으로 도망치는 아들, '자녀가 어떻게 되느냐'는 새댁의 질문에 '딸이 하나 있다'며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엄마까지. 새댁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그 날의 사건'과 저마다의 공간에서 괴로워하는 가족을 보며 관객은 알게 된다. 평범했던 이 집은 친구를 죽인 살인범이 사는, 동네 사람들이 증오하는 '악마의 집'이란 것을.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사진)'은 가해자와 그 가족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14세에 친구를 죽여 살인죄로 복역하다 모범수로 출소한 스무 살 대환과 그의 가족을 통해 '가해자와 그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살인자는 용서를 받을 수 있나', '사건 가해자를 대하는 세상의 시선은 어떤가' 같은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작품은 대환의 살인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자극적이 장면이나 대사로 비참한 현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안고 살아가는 대환과 가해자도, 그렇다고 피해자도 될 수 없는 그의 가족의 일상을 통해 삶 속에 녹아든 잔인한 긴장과 고통을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밤마다 대환을 찾아와 괴롭히는 '소년 B'는 6년 전의 살인범, 14살의 대환이다. 살인자, 가해자, 악마…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긴 이 가족은 '소년B'의 환영을 떨쳐내고 다른 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세상 사람에게 살인자 '소년 B가 사는 집'은 '평범한 대환이네 집'이 될 수 있을까. 아빠·엄마 역의 이호재, 강애심을 필두로 배우들의 밀도 있는 감정 연기는 수시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용서? 바라는 것도 하는 것도 다 위선이야', '제가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같이 지극히 현실적인, 그래서 아픈 대사도 인상적이다.
극 중 엄마는 시장에서 사온 덜 익은 감을 보며 "그런 애들이 지나면 더 달아져"라고 말한다. 관객은 안다. 떫다 못해 쓰디쓴 대환의 죄, 그리고 가족의 아픔은 시간을 약 삼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잔인해 보이는 이 말을 통해 작가는 그저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애써 믿으며 그들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4월 26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