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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 들어옵니다. 머리 조심하세요." "물건 좋다. 엉키지 않게 빨리 빨리."
22일 오전 6시 충남 보령시 대천항. 안개가 자욱한 바다 사이로 어선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서서히 부두 쪽으로 접근하자 근처에 대기하던 어민 20여명이 일제히 하역장으로 뛰쳐나갔다. 초조한 표정으로 배를 쳐다보던 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뒤 꽃게를 가득 실은 배가 부두에 정박하자 어민들의 낯빛은 이내 밝아졌다.
21년 동안 대천항 하역장에서 근무했다는 김진배 황금수산 대표는 "선장 눈빛만 봐도 물건 상태를 안다"며 "작년 가을보다 꽃게 품질이 나아지고 수요도 살아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서해안 꽃게는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연평도, 대천·서천, 진도가 3대 산지. 봄에는 알을 배어 통통한 암꽃게가 인기고 가을에는 한창 살이 오른 숫꽃게가 주로 잡힌다. 이날 잡은 꽃게도 90% 이상이 암꽃게였다.
암꽃게는 무게에 따라 대·중·소라고 적힌 박스로 일사분란하게 옮겨졌다. 최상품으로 꼽히는 300g 이상은 대박스에 담기고 240g 이하와 숫꽃게는 별도 상자에 자리를 잡는 식이다. 선별된 꽃게는 바로 옆 경매장으로 이동해 이윽고 가격표가 매겨진다.
지난해 대천항 어민들은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일본 방사능 공포로 꽃게 수요가 급감한데다 기온 상승으로 수확량까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한창 팔려나가야 할 활(活)꽃게의 절반이 냉동 처리될 정도로 혹독한 시기를 겪었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위축되다 보니 kg당 가격이 2만9,000원에서 3만6,000원으로 20%가량 껑충 뛰기도 했다. 이영훈 보령수협 경매사는 "서해안 꽃게는 일본 방사능 오염과 거리가 상관이 없는 데도 여전히 수산물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올해는 꽃게 가격이 안정화되고 품질도 좋아져서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대천항 경매장에 풀린 꽃게는 kg당 평균 3만3,000원선에 거래됐다. 물살이 느린 조금이어서 사리였던 지난 10일 경매가인 2만9,000원보다 다소 올랐다. 하지만 올 초부터 이달까지 평균 가격이 2만6,000원에서 3만3,000원 사이를 유지하고 있어 어민들의 기대감도 한껏 높아진 분위기다.
이날 꽃게 구입을 위해 대천항을 찾은 정원일 농협유통 선어활어팀장은 "작년에 비해 kg당 평균 가격이 3,000원 가까이 떨어져서 수요도 15% 이상 살아나고 있다"며 "작년에 농협유통에서 서해안 꽃게 30톤을 유통했는데 올해는 35톤 이상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