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영 이튼고 넬슨 제독 추념식 참석/“참된 교육 펼쳐 당당한 한국인 양성” 다짐96년 3월 1일,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의 파스퇴르유업 공장 뒤편의 산등성이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민족사관고등학교 개교식 겸 첫 입학식이 거행된 날이었다.
학생들과 선생들에게도 전통과 실용성을 가미하여 특별히 고안한 한복을 입히고 자신도 검정 두루마기 차림으로 나온 최명재이사장은 만감이 교차하는듯 떨리는 목소리였다.
『여러분은 모두 30명으로 보잘것 없는 수다. 그러나 여러분중 한 사람이라도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할때 한국의 운명은 밝다.』
이 한 마디 속에 최회장이 이 학교를 설립하게된 동기, 그리고 왜 이런 특수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고집을 부렸는가 하는 목적, 그리고 하필이면 소수정예의 수월성교육(천재교육)이냐 하는 교육방법과 체제의 문제에 대한 그의 선택의 이유 등이 모두 압축되어 나타난다.
최회장은 입버릇처럼 『나 같은 상인은…』하고 말한다.
그가 상인정신에 철저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의 모든 것과 이루어 놓은 부의 모든 것을 털어넣어 만든 이 학교야말로 최후 최대의 결정적인 투자인 셈이다.
상인은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투자한다. 그의 투자는 어떤 이익을 기대한 투자일까. 앞서 인용한 연설에서 나왔듯이 「미래 한국의 운명」이 그 투자 대상이었다.
최회장이 「교육사업」에 마음을 두기 시작한 연원은 오래다. 70년대 후반 이란에 진출하여 질풍노도와 같은 사업을 벌이고 있을때 그는 틈만 나면 유럽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았다. 관광단에 섞여 런던에 갔을때 그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이튼고등학교를 방문했다. 한국에서 여행객이 찾아온 이날 이튼고등학교는 나폴레옹의 함대를 격파시킨 국가적 영웅인 넬슨제독의 추모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그 장엄한 기념식을 보면서 최회장은 생각했다.
「이것이 영국의 힘이구나.」
그와 함께 한국 교육의 한심한 현실이 저절로 떠올랐다. 「우리에게는 넬슨보다 더욱 위대한 충무공이 있었다. 그러나 겨우 사당을 지어놓고 참배하는 정도이지 어느 학교가 그의 전승을 기념하며 행사를 하는가. 어느 학교가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참된 교육을 하고 있는가.」
한 국가의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는 그의 생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갔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그의 생각은 이미 「세계화된 미래사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인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유능한 한국인, 그러면서도 민족적인 정통성과 자존심을 잃지 않는 당당한 한국인을 길러 내는 방법이 없을까. 이것이 「상인 최명재」가 지닌 화두였다. <이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