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예결위, 하라는 예산심의는 안하고

요즘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운용실태를 보면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이 언제가야 제 모습을 찾을 것인가에 대해 원초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국회의 예산심의는 종종 정쟁의 도구로 이용됐다. 여당에 대항할 힘이 없었던 소수 야당이 예산심의를 거부함으로써 정부ㆍ여당의 예산집행을 막는 것을 대여투쟁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이후 국회가 예산심의를 보이코트 한 적이 없었다 뿐이지 이를 정쟁의 볼모로 삼으려는 시도는 간단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재 야당인 한나라당이 예결위에서 취하고 있는 자세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처럼 야당이 소수당이 아니라 다수당이라는 점이다. 117조원의 새해 예산안에 대한 국회 예결위의 심의는 지난 12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예결위는 하라는 심의는 제쳐두고 연일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혐의에 대한 폭로전으로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 폭로 내용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루머 수준이어서 면책특권의 장막 뒤에서 저지르는 무책임 정치가 아니냐는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다수 야당의 대여투쟁이 겨우 그런 수준인가에 대한 실망감은 제쳐두자. 또 백번 양보해서 야당에겐 수사능력이나 정보능력이 없어 그런 방식으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이 맞다고 치자. 다만 한가지 그런 투쟁을 하려거든 예결위가 아닌 해당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다. 왜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예산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정쟁거리를 들고나와 시간을 낭비하고, 예산심의를 방해하느냐는 말이다. 그 점에서 현 국회, 특히 야당의 예산안 심의 자세는 과거 군사정부 시대에서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무위원들이 예결위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은 해당부처의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다. 예결위는 예산소요의 사유를 놓고 국회와 정부가 열띤 토의를 해야 할 자리다. 그럼에도 국회는 국무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이용해서 정치투쟁의 기회로 삼고 있으니 더욱 한심하다. 정부를 흠집 내서 내년 총선에 이용하겠다는 수준 낮은 선거전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세월을 허송하고서 내달 9일 정기국회 폐회직후 임시국회 소집을 해야 한다고 소동을 피우고 있으니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짓들이다. 예산심의는 국회의 으뜸가는 존재이유다.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서 국민의 세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최상의 선거전략임을 깨달아야 한다. 국회는 예결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살려라. <김진영기자 eagle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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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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