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이 요즘 한국 농민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오는 12월 중순 홍콩에서 열릴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무산시키기위해 격렬한 시위로 이름높은 한국 농민들이 대거 몰려온다는 소식 때문이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 1천300명을 포함해 최대 2천500명의 한국 농민과 노동자가 홍콩 WTO 시민감찰연대가 주관하는 반(反)WTO 시위에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시위 역사상 최대의 해외 원정 시위가 될 전망이다.
홍콩 경무처는 WTO 각료회의 기간에 외국인 시위대 1만1천명이 홍콩에 집결할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중 한국 시위대가 경계 대상 1호로 꼽히고 있다.
홍콩 경찰은 특히 지난 2003년 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한국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할복 자살한 일을 떠올리며 처음 맞는 한국 시위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난감해 하고 있다.
집회 및 시위가 일상화된 한국과는 달리 홍콩은 1960년대 반영(反英) 시위 이후`공공질서법' 제정으로 폭력 시위가 사라졌으며, 과격 시위 대처 경험과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작년과 재작년 50만 명이 모인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에서도 처벌자가 한 명에 불과할 정도로 평화행진 시위가 익숙한 나라다.
특히 한국 내에서 쌀 협상안이 국회 비준 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시위가 한국 농민들 주도로 과격하게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홍콩측은 보고 있다.
홍콩 경찰은 현재 홍콩 시민단체를 제쳐두고 전농측과 직접 대화하기 위해 공문까지 보냈지만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일부 교민들도 한국 농민들의 과격 시위가 벌어질 경우 `한류' 바람으로 한껏 고양돼 있는 홍콩 내 한국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이 아닌 지, 홍콩의 국제 기관투자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를 걱정하고 있다.
홍콩 경무처 관계자는 "홍콩은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으며 각종 단체들이 WTO 각료회의를 반대하며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환영한다"면서 "그러나 시위는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의 공공질서법은 한국처럼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과 대치하는 경우 `폭동(riot)'으로 규정하고 14년 이하 징역에 처할 정도로 엄격하며, `점거'라는 말을 꺼내거나 각목 등을 소지하는 것 만으로도 처벌대상이 된다.
최근 홍콩 정부는 테러리스트나 해당국에서 불법 시위를 한 전력자는 입국을 금지할 방침이며, WTO 회의를 앞두고 800명 수용 규모의 빅토리아 교도소를 비워두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