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열강속 小國의 숙명

최원정기자 <국제부>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을 시작으로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에 이르기까지 옛 소련권 국가들의 시민혁명바람이 거세다. 이들 혁명은 독재와 부패 청산, 민주화에 대한 그 나라 국민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혁명의 배후에는 ‘민주화, 그 이상의 것’ 즉 이웃 열강들의 파워게임이 자리잡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는 이 지역 동부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고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통로를 얻기 위해 친러시아 성향의 구세력에 힘을 실어줬었다. 반면 러시아의 속셈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민주화를 명분으로 빅토르 유슈첸코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키르기스 레몬혁명의 배경에도 오래전부터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 92년 ‘자유지원법’을 제정해 옛 소련국가들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주도해왔다. 지난해 미국이 키르기스의 민주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에 지원한 금액만 1,200만달러에 이른다. 퇴진한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호화로운 생활을 보도해 시민혁명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한 야당 신문도 미국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미국의 돈이 시민들의 민주화의식을 고취시켰고 혁명의 원동력을 결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키르기스 지원에 적극적인 이유는 키르기스의 지정학적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키르기스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 석유 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송유관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또 옛 소련이 붕괴한 후 ‘무주공산’이 된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점이 될 수도 있다. 옛 소련권 국가들의 시민혁명과 그 배후에 깔린 강대국들의 논리는 약소국(弱小國)이 ‘진정한 자주’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는 강대국 사이에 낀 슬픈 지정학적 운명을 지고 있는 소국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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