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따지자면 참여정부 들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이라는 말처럼 자주 듣는 용어도 드물 것이다. 정부나 한국은행 관계자들의 말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잠재성장률이 4 내지 5% 사이에서 정리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최대 5%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순탄하게 굴러가 생활의 질도 나아지고 국력도 튼실해질 수 있다는 결론인 것이다. 4~5% 성장으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면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고위층 경제관료들에게 “철없는 소리는 그만 하라.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고도성장에 너무 길들여진 탓이다”는 식으로 국민들은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 잔치'
이석채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지난 30년 이래 최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세계 경제와는 달리 우리나라가 지난 2003년 이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8%에 그치는 등 저성장을 계속해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꼭 이 전 비서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참여정부 들어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 달성은 고사하고 심각한 저성장 국면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정부는 언제나 ‘잠재성장률’이라는 목표에만 집착해왔다.
잠재성장률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허점이 많다. 올해의 경우 정부가 예측하고 있는 5% 성장률에서 약간 밑도는 4% 후반에서 성장률이 결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해도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니 한국 사람들은 올 한해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제관료들이 몇이나 있을까. 돌이켜보면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위기’라는 말의 홍수 속에 국민들은 불안해 했지만 정부 관료들은 언제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가 가능하지만 교역 조건 악화로 실제 국내에 떨어지는 국민총소득은 1.5%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경제는) 사실상 불황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렇게 아우성쳐도 콧방귀만 뀌던 참여정부의 고위관계자가 이제 와서야 국민들의 삶이 매우 고단했음을 시인하고 있으니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참 좋은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세계 평균 성장률 근처에서 허덕거리며 모질게 생명만 연장해왔다. 글로벌 경제가 워낙 좋은 탓에 세계를 무대로 뛰는 삼성ㆍ현대차ㆍLG 등 몇 개 그룹만 선전해도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 근처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잠재성장률’은 그들이 은근히 꺼려했던 몇 개 대기업 집단이 세계 경제 호황 기류에 약간만 편승해도 달성할 수 있었던 그런 목표는 아니었을까.
그 같은 결론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지만 정부는 국민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이들 기업보다 한 일이 뭐가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어찌 됐든 정부가 목표로 세운 잠재성장률 4~5%에 플러스 1~2%포인트를 보태야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이 나아질 텐데도 정부는 그동안 5% 이상은 고도성장이라며 오히려 경제의 뒷다리를 걸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기업 적극지원해 경제 활력을
그러던 정부가 요즘 우리 경제를 불황이라고 규정하면서 ‘뭔가 해보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고 있으나 국민들은 환호를 보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걱정스런 표정이다.
저간의 사정을 종합해보면 열린우리당 주변에서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최소 6%는 돼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4% 초반에서 최악의 경우 3%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2007년 경제 전망을 앞두고 6%라는 목표치가 맹위를 떨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성장 구도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를 찾아내 근본적인 치유책을 만들고 기업활동을 적극 뒷받침하는 획기적인 발상 전환 없이 대선용 경기 진단과 응급처치만 난무해 우리 경제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어찌 없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