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STX 유럽조선소 국내자본이 사달라"

그룹측 "크루즈선 제작 핀란드·佛 등 부가가치 높아<br>"헐값 해외매각 아까워… 국익차원 연기금 등 투자를<br>알짜매물 절반이나 싸게 매각할 판<br>사모펀드·국민연금 등 역할론 부상


STX 채권단 실무자들이 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소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동호기자

채권단, 자율협약 통해 지원 가닥


STX그룹 측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물로 내놓은 핀란드와 프랑스 같은 유럽 조선소를 국내 자본이 사달라고 'SOS'를 쳤다. 핀란드 조선소 등은 크루즈선을 주로 하는데 고급기술인데다 부가가치도 높아 해외에 팔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논리다. 지금 쫓겨서 매각하면 헐값에 넘겨야 하고, 이는 고스란히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외환 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외 자본들은 시한에 쫓긴 기업들로부터 헐값에 알짜 매물을 사들였다. STX 역시 지난해 STX OSV를 이탈리아 업체에 파는데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에 치여 제대로 협상도 못한 채 외국 업체에 넘겨야 했다.

STX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6일 "핀란드 조선소는 최근에도 크루즈선을 한 척 수주해 건립하고 있다"며 "크루즈는 첨단 기술인데다 지금 갖고 있는 노하우가 커서 우리나라 산업을 보호하면서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모펀드(PEF)나 국민연금에서 투자해 사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지금 사도 싼 가격에 조선소를 사들일 수 있다"며 "PEF 등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을 감안하면 틀림없이 돈이 된다"고 강조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STX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유럽 조선소를 팔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외국인이 사는 것보다는 국내 자본의 손에 들어가는 게 국익 차원에서 낫다는 얘기다. 이미 STX다롄 조선소는 다롄시 정부로 처분권이 사실상 넘어간 상태다. 모회사격인 STX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서 거금을 들인 다롄 조선소를 중국에 넘길 처지다.

실제 STX의 핀란드 투르크 조선소와 프랑스의 쌩라재르 조선소는 크루즈 선박과 방산업무를 주로 한다. STX에 따르면 핀란드 조선소는 현재 TUI사가 발주한 크루즈선 2척을 건조하고 있다.

두 조선소를 아래 두고 있는 STX 유럽법인의 수주 잔량은 10척에 금액으로는 32억달러다. 특히 STX의 유럽조선소들은 크루즈에 관한 한 세계 3대 메이저다.

STX 유럽의 지난해 크루즈 수주잔량은 60만2,000GT로 점유율이 21.6%다.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35.4%)와 독일의 메이어 베르프트(30.11%)에 이어 3위 수준이다.

크루즈선의 경우 진입이 쉽지 않다. 지금도 크루즈선은 주로 유럽에서 건조된다.


영국의 해운ㆍ조선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오는 2020년까지 크루즈선 건조량은 연평균 8%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TX 측은 "크루즈선 건조에는 오랜 경험과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한다"며 "STX는 22만5,000톤(GT) 규모의 세계 최대 크루즈선을 비롯해 선박 크기 기준 상위 15개 크루즈선을 모두 건조할 정도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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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측이 걱정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STX OSV'의 사례가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STX는 STX OSV의 지분 50.75%를 지난해 말 이탈리아 조선업체인 핀칸티에리에 매각하고 7,680억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철저히 '을'인 STX 입장에서는 가격협상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STX의 한 고위관계자는 "STX OSV는 1조2,000억원은 받아야 하는데 반값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을 받고 팔 수밖에 없었다"며 "유럽조선소를 팔 경우에도 유럽 기업들이 나선다면 최대 50% 정도까지는 깎으려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급한 것은 STX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헐값에 조선소를 사갈 수 있다는 말이다. 크루즈 부문은 지난해에 30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 때문에 국내 사모펀드(PEF)나 국민연금의 역할론이 나온다. STX에서도 이를 바란다. 1차적으로는 매각흥행을 기대하는 것이지만 국부 유출 문제는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돈이 급한 STX로서는 국내 업체에 팔더라도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처지가 안 된다.

STX 측은 해외 조선소 매각으로 약 2조원의 현금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크지만 현재의 인수합병(M&A) 규모로 보면 불가능한 수치도 아니다.

보고펀드 등이 관심을 갖고 있는 ING생명 한국법인은 2조2,000억원 수준이다. 동양생명에도 사모펀드가 몰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실사와 산업적 마인드만 있다면 인수 참여를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STX 고위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와 연기금이 금융사에 관심 있는 것도 좋지만 산업을 보호하고 핵심 기술력을 가져올 수 있는 그런 딜을 해야 한다"며 "국가적으로 보면 유럽조선소가 헐값에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위관계자는 "지금의 STX 유럽조선소도 STX가 현지에 있던 것을 사온 것으로 기술 같은 부분을 많이 배웠다"며 "크루즈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언젠가는 해야 할 부분으로 국내자본이 인수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이날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회의실에서 ㈜STX와 STX중공업ㆍSTX엔진 등에 대한 실무자회의를 열어 STX의 요청대로 자율협약을 통해 STX그룹을 지원하는 데 의견접근을 이뤘다. 채권단은 STX의 회사채 만기가 줄지어 도래함에 따라 올해 1조원 안팎의 자금지원에 나서는 대신 STX의 실사가 끝나는 6월 초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회의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STX 계열사 3곳이 신청한 자율협약 내용과 오는 14일 만기도래하는 ㈜STX 회사채 2,000억원의 긴급지원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채권은행들은 자율협약 동의 여부를 늦어도 13일까지 산은에 전달해야 한다.

회의에 참석한 한 채권단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큰 대기업이 무너질 때의 파장을 생각해서라도 일단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채권은행별 익스포저(여신) 비율대로 간다면 큰 이견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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