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가 아니라 그냥 방송위 아닙니까." 지난 4년 동안 통신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숱하게 되풀이됐던 말이다. 그만큼 통신업계에선 주무부처인 방통위로부터 제대로 정책적인 뒷받침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방송 편중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정치논리에 휘둘렸던 통신정책이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게 통신업계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MVNOㆍ제4이통 등 큰 그림부터 그려야=방통위가 지난 수년간 공을 들였지만 여전히 사업자 선정도 못한 제4이동통신과 아직 성공사례가 없는 이동통신재판매(MVNO) 관련 사안은 더 이상 늦추기 힘들다. 두 사안 모두 가계통신비 인하를 이끌어낸다는 등의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VNO의 경우 대기업 계열사인 CJ헬로비전이 올 초부터 사업을 개시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MVNO 사업자들이 통신사로부터 통신망을 빌릴 때 내는 도매대가 산정, 단말기 수급 지원, 해외 로밍 등의 제도적인 과제가 남아있다. 이에 대한 방통위의'큰 그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모바일인터넷(KMI),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등이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제4 이동통신도 마찬가지다. 김진교 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후발주자들이 성공하기 힘들다"며 "사업권 허가보다 본질적인 이슈는 기존 이동통신사와의 차별화인데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서 접근할지 등에 대해 큰 고민을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사업권을 받는다고 했을 때 그들이 살아남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망중립성 문제도 과제 =최근 KT와 삼성전자의 극단적인 갈등으로 표출된 망중립성 문제도 방통위의 또 다른 과제다. KT는 삼성전자의 스마트TV가 과도한 데이터트래픽을 발생시킨다며 통신망 이용료를 삼성전자에서 따로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들이 각각 요금을 부담하고 있는 데다 트래픽 발생량도 KT의 수치보다 적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일부 서비스 접속을 나흘간 제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방통위의 존재감은 희미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은 "데이터 트래픽이 얼마나 유발되는지가 최대 쟁점인데 방통위에서 몇 백억원의 연구용역비를 들여서라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라며 "어느 쪽 이야기가 맞는지 확인한 다음에 과도한 트래픽이 나온다면 일정 부분 통신망 이용료를 받아서 주파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스마트TV 제조사, 서비스 제공업체가 이동통신사가 아닌 국가에 이용대가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TE 출혈경쟁 진화 시급=이동통신사들 사이의 출혈경쟁을 어떻게 잡느냐도 현안이다. 이통사의 지나친 경쟁은 통신업계 전반은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루 이틀 사이의 문제는 아니지만 올해 롱텀에볼루션(LTE) 가입자 확보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통사간 경쟁도 유례없는 수준으로 과열될 전망이다.
방통위에서도 올해 이통사들의 지나친 경쟁을 사전차단하기 위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과징금 외에는 제재할 수단이 없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매출액의 20%를 넘지 않도록 하는 방통위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지킨 이통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수십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당장 LTE 스마트폰을 구입한다면 해당 가입자는 이득이지만 LTE 스마트폰에 관심 없는 대다수 소비자들은 차별 받는 셈"이라며 "과도한 광고비 역시 결국 가입자 부담으로 전가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