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기업 지원이 세계적 작곡가 키우는 기틀"

호암상 예술상 수상 진은숙씨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 창작에 대한 기업의 지원은 세계적 작곡가를 키우는 기틀이 됩니다. 음악의 역사를 이어가는 중추적 역할은 창작, 즉 작곡에 있는 만큼 우리 작곡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22회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하는 진은숙(51ㆍ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 겸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20세기 이후 연주자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사실 모차르트ㆍ베토벤ㆍ슈베르트 등 유명 음악가는 대부분 작곡가"라고 강조했다.

진씨는 "비인기 장르인 현대음악에 대한 국내 문화계와 기업의 관심에 놀랍고 또 감사드린다"며 수상의 기쁨을 밝힌 뒤 "호암상 수상 소식을 해외 지인들에게 알렸더니 '현대음악가에게 주는 그렇게 큰 상이 한국에도 있느냐'고 놀라더라"라고 전했다.


지난 1985년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음대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며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아노와 타악을 위한 '이중협주곡', 소프라노와 앙상블을 위한 '말의 유희' 등 20여곡을 작곡했다.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뮌헨필의 초연을 시작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LA필하모닉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무대에 올렸다.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 생존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쇤베르크작곡상(2005), 모나코 피에르대공작곡상(2010)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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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는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우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중학생 때부터 예식장 반주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는 "중학생 때 작곡가가 되겠다고 혼자 공부를 시작했지만 악보를 살 형편이 못돼 차이코프스키ㆍ스트라빈스키 등의 교향곡 악보를 빌려 수백장씩 베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진씨는 유럽에서 현대음악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국내에서는 남동생인 평론가 중권씨, 음악평론가인 언니 외숙씨가 더 유명하다. 그는 "집에서 공부를 하라거나 커서 뭐가 돼라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작곡가를 꿈꾸는 둘째 딸에 대한 부모의 관심은 기대할 수 없었다"며 "부모의 간섭이 없었던 것이 되레 내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삼수 끝에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 작곡을 가르친 강석희 교수가 "해외 무대에서 활동해보라"고 권유해 독일학술교류처 장학금을 받아 함부르크음대, 베를린공과대 전자음악연구소 등에서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2006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를 맡은 뒤 후배 양성을 위해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는 진씨는 "이제 후배들에게 베풀어야 할 때"라며 멘토로 나섰다. 그는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학생의 작품을 지난 1월 파리 공연에서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후배들의 좋은 작품을 발굴해 해외 연주단체에 계속 소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ㆍ김선욱 등 연주자들이 국제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해외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지만 작곡가는 연주단체가 선곡할 때까지 대중에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6월2일 호암재단이 마련한 '진은숙과 함께하는 렉처 콘서트' 등 국내 공연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그는 "전통과 과거보다는 미래의 창의적 문화에 관심이 많다"며 "100년 후 한국 음악계에 초석을 놓는 코스모폴리탄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장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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