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하캔색에 있는 부동산 융자ㆍ컨설팅 회사인 유나이티드펀딩 사무실. 기자가 이 곳을 방문한 것은 15일 오후 3시(현지시각). 사무실 안은 연신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와 전화응대 목소리가 섞여 시장판같이 시끄럽다. 대부분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주택경기 활황에 편승해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대출을 받은 한국인들이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해 거리에 나 앉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애달픈 사연들이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높은 이자를 견디지 못한 한인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어요. 심지어 집을 두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유나이티드펀딩 김현숙 부사장의 설명이다. 아예 이 곳을 찾아온 한 남자는 “모기지 업체로부터 ‘당장 집을 비워달라’는 차압 딱지를 받았다”며 “‘살아날 방법’이 없겠느냐”며 애꿎은 담배만 피워댄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부실로 한인사회가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부동산경기 끝물이었던 지난 2005년부터 무리하게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았던 교포들이 평균 50만~60만달러인 집값의 10% 이상을 이자로 내야 하는 지경이다. 또 한국 정부의 해외투자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자녀 유학용이나 투자용으로 집을 사두었던 ‘원정 투자자’들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원리금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속앓이가 깊어졌다. 특히 한인 밀집지역인 뉴저지와 뉴욕ㆍ로스앤젤레스(LA) 등 대도시에는 위기를 호소하는 ‘곡(哭)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김모(47)씨는 지난 2005년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67만달러에 집을 장만했다. 집값의 80%는 미국 최대 서브 프라임 모기지 회사인 컨트리와이드에서 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20%에 대해서도 2차 모기지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이자율이 5~6%에 불과해 가계살림으로 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자율이 11%까지 뛰어올라 3개월 동안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했다. 결국 며칠 전 차압 통지서를 받고 말았다. 한국에서 원정투자에 나서 재작년 LA 라미라다 지역에 62만달러짜리 집을 샀던 강모(52)씨는 요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첫 2년간은 낮은 고정금리를 낸다는 모기지 업체의 유혹에 끌려 덜컥 계약을 했지만, 2년이 경과하는 오는 7월부터는 연간 12%에 가까운 변동 이자율을 물어야 한다. 원금상환은 고사하고 연간 이자로만 6만달러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코리아 타운인 LA 윌셔지역에 있는 론팩모기지의 제이 명 대표는 “한인들이 원리금 상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집을 팔려고 내놓고 있지만 매매가 안돼 결국 집을 은행에 넘기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며 “서브 프라임 부실여파로 한인들의 주택 압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바탕 광풍이 불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서브 프라임 부실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이제 열린 것에 불과해 앞으로 파장과 충격을 예상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미국 은행모기지협회(MBA)는 지난해 4ㆍ4분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13.3%로 급증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소비자문위원회(CAC)는 지난해 미국 전역의 주택차압이 전년대비 42%나 증가한 120만건에 달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압류건수가 200만건을 넘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상환능력도 없이 ‘묻지마 투자’식으로 미국 주택을 구입한 한국인들이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점점 늘고 있다. 모기지부실 경고 잇따라
그린스펀 "집값 더 내리면 경제전반에 충격"
메릴린치 "금리 인하안하면 경기침체 돌입"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확산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5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에서 열린 선물협회 강연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고 해결될 가능성이 10%에도 못 미친다"며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진다면 서브프라임 부실의 악영향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릴린치는 이날 투자보고서에서 올해 FRB 금리정책에 따른 두 가지 시나리오로 ▦금리 한 차례 인하→미 성장률 1% 내외 위축 ▦금리 동결→경기침체 확률 100%를 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데이비드 로젠버그 애널리스트는 "FRB가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하지 않을 경우 미 경제가 즉각적인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60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32명의 응답자가 서브프라임 충격이 다른 모기지 시장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또 13명(22%)의 이코노미스트는 서브프라임 부실로 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