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의 성공에는 벤처기업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렇다면 벤처기업 뒤엔 무엇이 있었는가. 천사, 즉 엔젤이 있었다. 하나의 벤처기업을 일궈내기 위한 지역공동체의 노력, 그것이 바로 엔젤네트워크이다.일본의 금융계와 벤처 캐피탈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호세이 대학 교수로 제직중인 고카도 히로유키(小門裕幸)가 쓴 「엔젤 네트워크」(곽노철 옮김·뜨인돌 펴냄)는 미국경제의 숨은 공로자 엔젤들의 활약상을 담은 책이다.
최근 새로운 경제용어로 자리잡고 있는 「엔젤」은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128번지를 중심으로 벤처기업가에게 자본을 제공해주는 전문투자가들을 말한다. 현재 미국에는 대략 25만명 정도의 엔젤이 활동중이며 잠재 엔젤 수는 150만에서 250만명으로 추산된다.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실리콘벨리의 무수한 벤처기업 뒤에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엔젤이 1,500~ 2,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 앞에는 언제든지 엔젤이 나타난다. 엔젤은 이들에게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자신들의 꿈을 현실화시키며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은 다시 엔젤로 변신해 또다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의 힘이다.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 「엔젤 네트워크」란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엔젤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제반여건이 조성된 사회, 문화적 망을 말한다. 그것은 또 개인의 능력에 대한 지역공동체의 신뢰도를 말하기도 한다. 특정 개인이 어느날 불쑥 신기술을 내놓았을 때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얼마전에 「마스크」란 영화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얼굴이 금속물질로 변하기도 하고 반대로 금속물질이 원래의 얼굴로 되돌아오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변신을 거듭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이것은 「모핑」이라는 기술로서 할리우드의 디지털 혁명이 낳은 하나의 산물이다. 원래 이 기술은 일본 도쿄공업대학의 한 학생이 개발한 것이었으나 당시 일본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다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것은 곧 미국에서도 개발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기술이 개발되자마자 할리우드가 발벗고 나서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대기업 문화가 뿌리깊은 일본과 미국의 차이점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LAN시스템을 공급하는 네트워크 페리퍼럴이라는 회사의 창업주 더렐 쉐버스는 미국의 엔젤 네트워크가 갖는 위력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산호세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을뿐,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도 받지 않았다. 그는 휴렛 패커드와 썬 마이크로 시스템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뒤 고든 스티브라는 친구와 함께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었다.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들은 휴렛 패커드사에서 상사로 모셨던 폴 이레라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 폴 이레는 퇴사후 알파 벤처 캐피탈이라는 회사를 설립, 엔젤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폴 이레는 쉐버스의 프로젝트에 호감을 느꼈으나 회사를 설립해도 경영은 따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야 함을 분명이 했다. 그저 자신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데만 관심이 있었던 쉐버스는 기술 담당 간부로 남는 길을 택했다. 그는 지금 주식을 전부 매각하고 옵션을 행사한다면 약 2,000만 달러의 재산가로 성장했다.
이처럼 벤처기업은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엔젤들이 참여했을 때는 그 회사를 최상의 상태로 올려놓는데만 관심이 있다.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결국 실리콘벨리의 성공은 지역공동체 정신에 있다. 그리고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리더가 아니라 정열적인 지역인들이 너나없이 협력하여 리더십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상의(회장 김상하)에서 한국엔젤그룹연합회의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2월중에 창립하는 전국규모의 서울엔젤그룹을 중심으로 20~30개의 기관이 참여할 예정이다. 미국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엔젤네트워크의 성공은 공동체정신과 새로움과 도전의식에 대한 정열, 그리고 믿음에 달려있다. 【이용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