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사회 개혁은 좌(左)로, 경제분야는 우(右)로 해결하겠다.”
참여정부 집권2기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탄핵소추 기각 한달여를 맞아 노무현 대통령의 이 같은 의지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일 민주노동당 의원들과의 만찬회동에서 열린우리당의 선거 공약이었던 아파트 분양원가 문제에 대해 ‘시장원리’를 이유로 공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문제는 개혁(대상)이 아니며 시장원리가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며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장원리’를 강조했다. 분양가 공개문제를 놓고 찬성하는 개혁파들 보다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이헌재 부총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벌 개혁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잣대가 적용됐다. 노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회동을 한 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해 온 ‘재벌 금융사 의결권 제한규정’은 상당한 유예기간을 두는 등 개혁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정도 후퇴한 측면도 있다. 일단은 노 대통령이 복귀 후 “경제위기론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부동산정책ㆍ재벌개혁 등 경제정책에 있어서 시장친화적인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우종합기계 등 부실기업 매각에 있어 노조의 주장에 동조했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의 의견 보다는 예외 없는 매각원칙을 강조한 이헌재 경제팀의 주장이 먹혀 들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다.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경제는 사실상 이헌재 부총리가 대통령이다”라는 말이 서슴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정치ㆍ사회 개혁에 있어서 노 대통령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개혁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해찬 의원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개혁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힌 부패청산과 정부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관리형’ 보다는 ‘돌파형’ 총리가 절실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밖에 최근 노ㆍ사ㆍ정 5자간 대화를 강조하면서 비정규직을 대화의 틀로 끌어들인 것도 그렇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일에는 6월 민주항쟁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공직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정부혁신을 추진하는 등 개혁과제에 집중해 노력하겠다”며 “지역구도를 바로잡지 못하면 정치 개혁은 불가능하다”며 학계와 시민사회가 지역구도 극복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직무 복귀 이후 정치와 경제 분야에 있어 서로 다른 잣대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두 분야를 어떻게 적절히 혼합하느냐에 따라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개혁’이라는 상반된 방안이 서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좌-우 줄타기’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