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김모(가명)씨는 자신의 주택 옆에서 새로 건물을 올리던 이모씨(가명)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공사로 집 벽에 균열이 생겼다는 이유였다. 재판 쟁점인 공사와 균열 사이의 인과관계, 손해 배상액의 범위 등을 판단하려면 현장 감정 결과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김씨나 이씨 모두 최소 500만원이 넘는 감정 비용을 낼만한 처지가 못됐다.
고민하던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했다. 재판부는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와 함께 현장검증에 나섰고, 이를 토대로 양측은 수리비용 50%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전문심리위원제도는 법원 외부의 전문가가 재판에 참여해 전문지식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는 제도로 지난 2007년 도입됐다. 판사는 건축이나 의료, 과학기술 등 생소한 분야를 전문가의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당사자는 비용을 한 푼도 안 들어 일석이조다.
그러나 실제 제도가 활용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가 노철래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도를 활용한 사례는 전국 법원을 통틀어 2,091건에 불과하다. 도입 직후인 2008년에는 257건을 기록해 2009년 548건으로 늘어나는 듯 했지만 2010년 484건, 지난해 433건으로 줄었다.
올해 7월까지 전문심리위원으로 선정된 전문가 1,838명 중 재판에 참여한 건수는 369건에 그쳤다.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이유로 턱없이 낮은 수당이 꼽힌다. 현재 전문심리위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20~40만원이다. 원거리에 있는 전문위원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에 사는 전문가가 부산 법원에 불려가도 받을 수 있는 수당은 큰 차이가 없다.
한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는 "수당이 워낙 낮다 보니 재판부는 전문가를 초빙하는 데 부담이 크고 전문가들도 나서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의 의견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고 참고 자료로만 쓰이는 점, 법원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점 등도 제도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홍보가 부족해 일선 판사들이 이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