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의사 →IT 사업가 →교수서 대권주자로 '드라마틱한 인생'

■ 안철수는 누구

어린시절, 부산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어린시절 안철수 원장.

신혼여행,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함께 1988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 모습.

의대 강의,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전기생리학을 강의하는 모습.

안철수연구소에서, 안철수연구소에서 노트북을 들고 있는 모습

서울시장 양보,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캠프를 방문해 손을 맞잡고 웃고 있는 모습

'의사→컴퓨터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래머→벤처 사업가→대학교수'라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일 대권 출마 선언으로 자신의 이력서에 '18대 대통령 후보'라는 경력을 추가하게 됐다.

그는 이 같은 자기 인생을 두고 한 책에서 "선택하는 순간부터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으며 이후의 길도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면서 "선택 이후의 변화를 두려워해 의대 교수에 머물렀다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이렇게 풍부한 삶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라고 썼다.


안 원장은 지난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동성초ㆍ부산중앙중ㆍ부산고등학교 시절까지 고향에 머물렀다. 고등학교 전까지는 중간 정도 성적의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낸 학생이지만 당시 또래에 비해 독서량이 매우 풍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원장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당시 책의 쪽수와 발행 연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그는 심정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을 전공했고 1990년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의 나이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지냈다. 하지만 1982년 처음 접한 컴퓨터에 흥미를 갖고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우연히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 그의 인생은 반전한다.

낮에는 학업을, 밤에는 바이러스 치료법을 연구하던 그는 1988년 백신(Vaccin)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훗날 안 원장이 세운 '안철수연구소'의 대표 프로그램인 'V3'의 최초 버전인 V1이다.


약 7년간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을 병행하던 그는 "어느 한쪽만을 집중해서 파고들어도 제대로 해내기 힘든데 둘 다 하다가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못되고 나 자신도 어정쩡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고민 끝에 1995년 3월 15일 안철수연구소를 창립한다. 개인에게는 백신을 무료로 보급하되 기업들에만 사용료를 받아 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운영 초기에는 사업 미숙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회사를 세우고 몇 개월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밟은 그는 유학 중이던 1997년 미국 백신업체 '맥아피'로부터 "안철수연구소를 1,000만 달러에 팔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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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99년 4월 체르노빌(CIH) 바이러스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사회에서 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다. 그해 안철수연구소는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에는 세후 순이익 100억원 돌파를 벤처기업 최초로 달성했다.

회사 창립 만 10년이 되는 2005년 안 원장은 돌연 대표직을 사임했다. 이후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MBA 2년 과정을 밟았고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카이스트 경영학 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직)을 지냈다.

안 원장은 2006년 지방선거 때 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 받는 등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수차례 정치권 입문을 제의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며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게 된 계기가 바로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 고민 이유를 두고 "정말로 자격 없는, 정치적 목적으로 시장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안 원장은 박원순 당시 후보에게 아무 조건 없이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이로부터 이날까지 약 1년간 안 원장의 입으로부터 '대권 도전'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으로 통칭되는 국민의 열망이 지속되자 그는 최근 "국민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판단하겠다"고 했고 이날 지난 1년간 계속됐던 고민의 마침표를 찍었다.

유병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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