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3000억 대출사기, 중소기업 돈줄 죄기 불똥 튈라

KT 자회사 직원이 납품업체와 짜고 3,000억원대의 대출을 일으켜 가로챈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다. 사기극에 당한 금융회사만도 시중은행을 비롯해 13개에 이른다. 특정 개인의 대출사고로는 사상 최대 금액이다. 사고개요를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은 5년 동안 100여차례 거래를 했는데도 의심조차 없이 대출금을 내줬다. 아무리 열 포졸이 한 도둑 잡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의 사기에 금융권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니 어이가 없다. 한 사람의 분탕질에 13개 금융회사가 철저히 농락당한 꼴이다.


초유의 사기행각이 드러난 계기도 KT 직원과 연락이 끊기면서 의심한 저축은행의 신고였다.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회장을 둔 내로라하는 시중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저축은행보다 못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대출 당시 아무리 KT의 인감이 찍혔다지만 대출금을 받은 문제의 납품업체 재무구조와 신용도도 따져봤어야 마땅하다. 사실상 대기업 대출이니 문제가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허술한 일처리가 화근이다. 여신관리의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면 내부통제 시스템에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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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이번 사고는 금융회사의 대출심사와 사후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상 초유의 대량 개인정보 유출까지 겹쳐 금융회사의 신뢰추락은 끝이 안 보일 지경이다. 신뢰와 신용이 생명인 금융회사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대기업인 KT의 관리 시스템도 먹통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금융권과 KT가 서로 피해자라며 책임공방을 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허술한 리스크 관리도 문제지만 이번 대출사기의 후폭풍이 더 걱정이다. 뒤늦게 대출심사와 사후관리 체계를 개선한답시고 중소기업의 대출을 바짝 죌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대출사고를 일으킨 문제의 외상채권담보대출은 납품하고도 현금을 받지 못한 중소기업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이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된다면 가뜩이나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금융권의 실책을 중소기업에 전가해서는 결코 안 된다. 금융감독 당국도 이런 점을 깊이 유념해 여신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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