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임박한 세자릿수 환율 시대] <2> 기로에 선 외환당국

경상수지 대규모 흑자에 당국 손발 묶여… 금리인하도 마땅찮아

시장 개입했다가 환율조작국 낙인

환율급락에 금리 대응사례도 없어


환율이 연초부터 롤러코스터 타듯 출렁거리고 있다. 엔저에 속도가 붙으면서 수출업계를 아연 긴장시켰던 환율은 6일 10원 넘게 오르며 드라마틱한 반등을 연출했다.

이날 환율이 급등한 배경엔 달러 강세도 한몫했지만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3일 앞두고 "한은이 9일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뜻밖의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한은의 기존 입장과 시장 컨센서스를 고려했을 때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지만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핑곗거리를 찾던 시장에 적당한 먹잇감을 던져줬다"고 촌평했다. 결과적으로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환율 급락에 일시적으로나마 브레이크를 건 것인데 뒷맛이 씁쓸했다. 보고서 하나에 흔들릴 만큼 우리 외환시장이 얕고 취약하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흑자의 '뒷면'=외환시장이 '이성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가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사실 많지 않다.


특히 최근처럼 환율이 방향성 없이 갈팡질팡할 때는 타이밍을 잡기가 더 까다롭다. '손발이 묶였다'는 표현이 딱 맞다는 게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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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엄포를 놔도 시장이 크게 긴장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초만 해도 토빈세를 언급하며 핫머니 규제 가능성을 언급했던 정부다. 하지만 엔화 약세에도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700억달러에 육박하면서 정부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오히려 환율 조작국 지목을 걱정할 정도로 분위기는 역전됐다.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좀 더 입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인정받은 수출의 '승리'가 아닌 국내 투자 감소와 수요 위축이라는 어두운 면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들이 외국에서 자본재를 수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것이 생산 및 소비 증가로 이어져야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데 지금은 투자가 워낙 안되니 경상 흑자가 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상 흑자의 주요 원인이 투자와 소비 위축이라면 경상 흑자가 줄어들더라도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대책이 나와줘야 한다는 의미다.

◇손발 묶인 외환 당국=오는 4월 일본의 소비세 인상이 단행될 때까지 수위가 높아질 엔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도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은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늘리면 원화 절상 압력을 낮춰 수출이 늘고 중소기업과 가계가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정구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도 "한국 경제가 디스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6일 보고서에서 금리 인하 근거로 세 가지를 들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는 "가파른 원화 절상, 시중금리 상승, 증시 약세 등을 감안할 때 금융 여건이 한국의 경기 회복 추진력을 잠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로 목표 범위를 밑돌고 정부 예산안이 지난해보다 완만하게 긴축적이며 한은이 올해 통화정책 방향에서 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이 더 많다. 엔저와 저물가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올 상반기까진 국제 금융시장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연초부터 공공요금과 각종 가공식품 요금이 줄줄이 오름세를 타고 있다.

지금까지 한은이 환율 급락에 금리 인하로 대응한 사례도 없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금리와 환율의 연관성은 낮다"며 "미국 테이퍼링에 따른 영향을 지켜본 후 올 하반기쯤 기준금리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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