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건축·패션의 도시에서 천재화가 다빈치를 만나다

이탈리아 밀라노<br>돌길 위·석조건물 사이 수백년 역사 숨결 오롯이<br>500년이나 걸려 완공된 '밀라노 심장' 두오모 성당 고딕 건축의 정수에 감탄<br>'최후의 만찬' 그려진 산타 마리아 교회 등엔 다빈치의 발자취 남아

밀라노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들르는 '밀라노의 심장' 두오모 성당이 장엄한 자태로 서 있다. 두오모 왼쪽 건물은 '명품 패션 1번지'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다. 밀라노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과 패션의 도시가 된 배경에는 15세기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인연이 자리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밀라노 전경.

15~16세기 밀라노의 세력가인 루도비코 스포르자 가문이 살던 스포르체스코 성과 분수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아치형 유리천장이 돋보이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내부.

1482년 서른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포 강이 가로지르는 기름진 파다나 대평원에 잠시 멈춰섰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위해서였다. 피렌체를 떠나 꼬박 일주일 동안 말을 달려 도착한 밀라노. 앞으로 눈앞에 펼쳐질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의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500여년 전 천재화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밀라노는 수백 년의 역사를 오롯이 관통하며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남아 있다. 관광이나 비즈니스 목적으로 밀라노를 방문하는 연간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석조건물 사이, 울퉁불퉁한 돌길 위를 거닐며 700년 역사의 숨결을 더듬는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롬바르디아주의 수도다. 롬바르디아주는 스위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알프스 산맥에서 시작해 포 강을 따라 펼쳐진 파다나 대평원을 지난다. 기원전 196년 로마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당시 로마인들은 밀라노를 '평야의 가운데'라는 의미의 '메디올라눔(Mediolanum)'이라고 명명했다가 이후 '밀라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오래 전부터 발달한 피혁 수공예 기술과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원단시장 등에 힘입어 밀라노는 베르사체와 아르마니∙프라다∙페라가모 등 쟁쟁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하며 '명품 패션 1번지'이자 전세계 최첨단 패션의 메카로 떠올랐다. 섬유공업을 바탕으로 1880년대에는 알프스 산맥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 금속∙화학∙기계 등 중화학공업에서도 큰 성장을 이뤄낸 밀라노는 산업발전 덕분에 이탈리아 제2의 도시이자 '경제수도'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밀라네제(밀라노 사람)들은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정신적 수도'라고 일컬을 만큼 밀라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콧대도 높다. '밀라노에 들어서면 일단 옷깃에 힘부터 줘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도시에서 마주치는 밀라네제들은 세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방금 화보에서 튀어나온 듯한 근사한 차림새를 뽐낸다. "밀라네제는 집 앞 슈퍼마켓을 가더라도 옷을 차려 입고 나갈 정도로 패션에 신경 쓴다.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밀라네제의 특성"이라는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패션과 미에 대한 밀라네제들의 남다른 DNA를 엿볼 수 있다. 밀라네제들의 이러한 기질은 거슬러 올라가자면 30세의 청년 다빈치가 밀라노에 발을 들여놓은 1482년에 잉태됐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연 천재화가는 밀라노에서 예술인생의 꽃을 피웠다. 인류 최대의 걸작이라 꼽히는 '최후의 만찬'을 붓끝에 옮긴 화가인 동시에 건축가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흔적과 발자취는 오늘날 밀라노의 정신적 밑거름이 됐다. 15~16세기에 살았던 다빈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밀라네제들의 정신 속에, 그리고 밀라노의 공기 속에 여전히 숨쉬고 있다. ◇밀라노의 심장, 두오모 성당=밀라노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들르는 두오모 성당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밀라노의 상징이자 이탈리아 최고의 고딕 대성당이다. 길이 158m, 너비 93m, 높이 109m의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는 두오모는 135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건물 외부는 3,400여개의 조각상과 150여개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성당 외벽을 따라 흐르는 눈길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성당 꼭대기에는 황금의 마돈나라 불리는 마리아 상이 있는데 이 상을 향해 소원을 빌면 밀라노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386년 밀라노의 영주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착공한 후 1813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면이 완공될 때까지 총 500년이 걸렸다. 대역사 기간 동안 수많은 건축가의 손길이 거쳐갔는데 그중 하나가 다빈치다. 특히 다빈치는 두오모 성당 건축을 위해 유럽 최초의 인공운하인 나빌리 운하를 건설하기도 했다. 성당 외벽에 쓰일 최고급 대리석을 아펜니노 산맥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바다에서 두오모 인근까지 수로를 끌어왔다고 한다.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자연의 순리를 인위적으로 역행한 그의 발상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비범함을 엿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쇼핑센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두오모 성당을 등지고 바로 오른편에는 아치형 유리천장의 아케이드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가 있다. 두오모와 함께 밀라노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는 갤러리는 건축가인 주세페 멘고니가 설계한 19세기 사교장이다. 세계 최초의 쇼핑센터라는 타이틀도 지니고 있는 이곳은 거리 양쪽을 따라 고급 명품숍과 카페∙레스토랑∙서점 등이 즐비하다. 갤러리 중앙의 대형 돔 아래는 로마∙피렌체∙토리노∙밀라노를 각각 상징하는 늑대∙백합∙황소∙적십자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다. 특히 황소의 생식기 부분에는 성인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부분을 뒤꿈치로 밟고 한 바퀴 돌면 행운이 온다는 '황소 밟기 전설' 때문이다. 황소 모자이크 위를 빙글빙글 도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실내 장식가 다빈치의 발견=다빈치의 예술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밀라노의 세력가인 루도비코 스포르자이다. 다빈치는 밀라노를 지배하던 스포르자 공작의 후원 아래 그의 대표작인 '암굴의 성모마리아'와 최후의 만찬 등 세계사의 걸작들을 창작했다. 두오모 성당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는 스포르자 가문의 스포르체스코 성이 있다. 다빈치가 건축에 참여한 이 고성은 현재 시립종합박물관으로 변신해 이집트 미술 및 고고학, 이탈리아 회화와 조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최후까지 조각했다고 알려진 미완의 조각상인 '론다니니 피에타'는 이곳 박물관의 백미다.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실내 장식가의 면모를 과시한 다빈치를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다빈치는 1498년 루도비코를 위해 성 북쪽 탑 1층의 '살라 델레 아세'의 프레스코 천정화를 완성했다. 서로 얽히고 설킨 가지를 통해 표현한 무성한 트레이서리(고딕 건축에서 창 등에 사용한 나뭇가지나 곡선으로 된 여러 장식 무늬)가 벽과 천정을 뒤덮으며 나뭇잎이 울창한 실내 나무그늘을 만들어낸 이 작품은 다빈치가 스포르자 가문의 실내 장식가로 일하면서 남긴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한다. ◇'최후의 만찬' 품은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밀라노의 전성기 흔적이 엿보이는 마젠타 거리에는 갈색 벽돌의 교회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교회 왼쪽 수도원 식당에는 바로 세계 유산인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이 그림 역시 전통적인 벽화 기법인 프레스코화 대신 당시로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유화 방식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다빈치의 실험정신으로 작품 완성 후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그림 대부분이 훼손돼 복원을 반복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전해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사나흘 동안 붓에는 손도 대지 않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새벽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휘몰아치듯 작품을 그려나가는 다빈치의 창작 스타일에 불만을 품은 교회는 그에게 '작품을 서둘러 완성하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이에 다빈치는 '유다의 얼굴로 사용할 악한 얼굴을 찾는 중인데 만약 찾을 수 없다면 수도원장을 모델로 쓰겠다'고 말하자 수도원장이 고민 끝에 사퇴했다는 일화다.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지런함이 필수다. 매일 제한된 인원에게만 관람을 허가하는 사전예약제 때문이다. 관람을 희망하는 날 최소 일주일(성수기에는 3주) 전에 사전예약을 해야 하며 예약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 자동적으로 관람 기회가 대기자에게 넘어간다. 다빈치 없이 도시의 역사를 논할 수 없는 밀라노는 인류문화와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역사의 산실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밀라노의 매력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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