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윤이 흑47로 귀를 보강하자 어느덧 좌상귀의 실리가 20집을 넘어섰다. "이것으로 흑이 나쁘지 않은 형세입니다. 이 수까지 놓였으니 좌상귀에는 더 이상 뒷맛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김승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네는 백58로 즉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막상 백이 움직이고 보니 호락호락 잡힐 말이 아니다. "뭐 꼭 살리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뒷맛만 살리자는 얘깁니다."(김승준) 강동윤이 시간을 뭉텅뭉텅 쓰고 있다. 5분을 생각하고 59로 막았다. 다시 5분을 생각하고 63으로 내려섰다. 이 수는 일단 최선이다. 궁도를 좁히겠다고 참고도1의 흑1에 꼬부리면 백2,4로 담박에 사고가 난다. 바로 이때 서봉수9단이 검토실에 들어섰다. 이 바둑이 열리던 때만 해도 서봉수는 한가했고 거의 매일 기사실에 나왔다. 지금은 바둑리그의 감독을 맡아서 많이 바빠졌지만…. 강동윤이 흑67로 잡으러 가는 것을 보고 서봉수가 선 채로 고개를 끄덕끄덕. "이리 좀 앉으시지요."(김승준) 김승준이 자리를 권하자 서봉수는 사양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았다. "잡히긴 잡혔겠지요?"(김승준) "그을쎄에…."(서봉수) 지금까지의 수순을 확인한 서봉수가 입을 열었다. "하네의 내공이 대단하네. 흑이 이기기 어려운 바둑이야."(서봉수) "아직은 갈길이 먼 바둑 같은데요."(김승준) "강동윤은 아직 어린애거든. 대국장 안팎의 분위기를 많이 타게 돼있어. 1번타자로 나선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거야."(서봉수) 서봉수가 검토실의 바둑판 위에 척척 놓아보인 가상도는 참고도2의 흑1 이하 백6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진행된다면 백의 외곽이 아주 두텁게 된다. 더구나 백이 A로 꿈틀거리는 수단까지 남는다. 흑B면 백C, 흑D, 백E로 패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