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인사이트] "경제 힘든데 재정 부담 커질라" 북유럽 부국이민 규제 목소리

불가리아 등 제한 풀려 내년 대규모 자유 이민 예고<br>독일 등 EC에 "복지쇼핑 막아야" 대책 요구 서한<br>EC선 "폐해 입증 안돼" 반대 입장… 유럽통합 악재 부상


한동안 잠잠했던 유럽 내 반(反)복지이민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고 있다.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이던 경제가 최근 다시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역내 빈국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국민이 내년 초 자유 이민 자격을 획득해 대규모 이민 러시를 예고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영국,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북유럽 부자 국가들은 복지 재정 증가를 우려해 반이민 드라이브에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 지도부는 이민으로 인한 폐해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긴축이냐 성장이냐를 놓고 갈라선 유럽이 이민 문제를 놓고 또다시 격돌하면서 유럽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부자 국가'이민 제한 추진=영국,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4개국은 지난 24일(현지시간) 각국의 내무장관 명의로 유럽 집행위원회(EC)에 이민 규제책을 시행하라는 취지의 공동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부터의 이민으로 교육, 보건 복지 체계에 심각한 부담이 가해지고 있다"며 "이민이 아무 조건 없이 실행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도 이 같은 움직임에 가세했다. 지난 25일 스위스 정부는 5월 1일부터 1년간 자국 내 장기 체류하는 EU 25개국 국민에 대해 인원 상한선을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1년간 스위스에서 장기 체류할 수 있는 에스토니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체코 등 8개국가의 국민은 총 2,180명으로 제한된다. 또한 다른 17개국의 국민 중 스위스에서 장기 체류할 수 인원도 총 5만 3,700명으로 제한된다. 이외에도 유럽 내 3번째로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스웨덴 또한 지난 2월 이민 규제안 시행을 시사하기도 했다.

◇경제 취약한데 '복지 쇼핑' 우려= 사실 EU 내 북유럽 국가들에서 이민에 대한 악감정이 대두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자가 늘자 "이민자가 일자리와 복지 수당을 빼앗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11년 노르웨이의 안데르스 브레이빅은 정부의 친이민정책에 반감을 품고 총기를 난사해 76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1월부터 루마니아, 불가리아 국민이 반이민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5개국을 비롯해 벨기에, 프랑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말타 등으로의 자유 이민을 허가 받게 되면서 이민 이슈는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EU는 신생 가입국의 국민이 역내 다른 회원국으로 이민을 갈 때, 일정기간 동안 제한을 받게 하고 있는데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내년 초부터 이 제한에서 제외된다.


더구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민은 현재 자유 이민이 허가된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 일명 '복지 쇼핑'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EU전문매체 유랙티브는 "비록 5개국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콕 집어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수천명의 이민자가 올 것을 두려워해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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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가 침체 터널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반이민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독일의 4월 종합 구매자관리지수 예비치는 6개월 만에 경기확장 기준선인 50을 밑돌았으며 영국 또한 지난 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3%를 기록, 트리플딥(삼중 경기침체)를 간신히 면했다. 네덜란드도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전년대비 -1%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0.5%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의 부유 국가들은 경기도 좋지 않은데 가난한 나라로부터 쏟아지는 이민자들이 범죄율만 높이는 등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사실 이민자들 대부분은 열심히 일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기 때문에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데도 이 같은 통계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EC 이민 촉진 제안서로 맞불= 이 같은 부자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반이민 정책에 대해 EC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조나단 토드 EC 대변인은 4개국으로부터의 서한이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성명을 내고 "서한에는 얼마나 많은 이민자가 어느 정도의 사회 복지를 요구하는 지 구체적인 숫자가 하나도 없었다"며 "이들이 국내 정치용으로 상황을 부풀리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EC는 한발 더 나아가 이민 촉진 제안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이민자와 고용주를 위해 제반 정보를 제공하는 기구를 만들 것을 각국 정부에 권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EC는 "국적 때문에 차별을 받는 EU 국민은 적절한 행정상ㆍ법적 절차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제안서로 EU 국민들이 각국에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4개국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국내 복지 체계에 부담을 안기는 어떤 시도에도 강력히 저항할 것"이라며 "결코 영국은 이민 오기 쉬운 나라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 또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EC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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