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정부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당선자 시절부터 줄기차게 기업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8개월이 다 된 지금까지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기업들 역시 정부가 너무 기업현실을 무시한채 여론몰이식 기업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며 역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는 시장원리와 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정부가 되레 기업자율과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정책을 쏟아부으며 기업을 몰아부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5대그룹 6대업종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데 산파역할을 한 손병두(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정부와 국민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업들의 자율적인 개혁을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孫부회장을 만나 구조조정과정에서 기업들이 겪는 애로와 고충, 그리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에 비해 기업의 구조조정이 더디다는 정부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좀 더 만족할만하게 서두르고, 강도는 더할 수 없는 것인지요. ▲대기업의 사업구조조정은 98년8월10일, 5대그룹 구조조정태스크포스를 구성한 이래 10월19일까지 불과 2개월만에 7개 업종(5대그룹 제조업 매출액의 32.7%)의 대규모 사업구조조정을 추진했습니다. 당초 정부가 기대했던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 3개 업종의 빅 딜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구조조정의 속도나 범위에 있어 금융권이나 공공부문에 비해 기업부문은 빠른 속도로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2차 사업구조조정을 미루겠다는 듯이 비쳐지고 있는데, 올해말까지 완결되는 것입니까. ▲대기업들은 1차 사업구조조정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차 사업구조조정이 원만히 마무리되고, 이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나올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1차 사업구조조정이 12월말에 완료될 것으로 보이므로그 후에나 2차 사업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기업들이 나올 것이라는 시각에서 내년 이후 추진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업계 스스로 하겠다는 업종이 나온다면 11월부터라도 당장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구조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강력히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업계는 자율과 시장에 맡기라고 맞서고 있는데 자율에 맡겨둘 경우 너무 시간이 지체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업구조조정은 시장경제의 원칙아래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퇴출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개혁은 제도와 환경을 정비하는 것으로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업은 환경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환경이 가장 좋다는 미국의 경우에도 구조조정은 10년이 걸렸고, 뉴질랜드도 7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재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 진행과정을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서로 협의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 좋고, 또 민간의 자율로 조정하는 것이 대외신인도 제고에도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기업구조조정의 최대 걸림돌은 무엇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바람직한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여론이나 정책당국의 지나친 조급성이 문제입니다. 특히 협상에서는 타결될 때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데 중간에 새나가 협상자체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울러 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혁은 환경과 제도의 개선으로 빨리 추진할수록 좋 지만 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 각부처에 산재되어 있는 구조조정과 관련된 걸림돌을 신속히 제거할 수 있도록 늦어도 이번 국회에서 필요한 입법조치가 완료됐으면 합니다. 외자유치를 위해 원스톱 서비스 지원체재를 구축하는 마당에 이보다 훨씬 중요한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원스톱 서비스 지원체제를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게 업계의 생각입니다.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5대 기업에 대한 회사채 발행제한, 구조조정지연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지정, 금융지원중단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책은 무엇입니까. ▲5대 기업의 회사채는 무보증 사채로 시장참가자들이 투자위험이 적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사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규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중소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가 소화되지 않는 이유는 금융기관의 회사채 지급보증 기피, 신용불안 등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정책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에게 공정해야 합니다. 대기업이 금융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말은 금융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2000년3월까지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라는 정부 방침이 지난 22일 밤 정·재계간담회에서는 올해말까지 이종업종간 상호빚보증을 해소하라는 요구까지 겹쳐 오히려 혹을 떼려다 붙이는 꼴이 됐습니다. 기업들은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데 개선방안은 없을까요. ▲상호지급보증해소는 지난 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의 5대 합의사항에 따라 2000년 3월까지 마무리하기로 돼있고, 모든 기업들은 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기존 5대그룹이 2000년 3월까지 상호지보 해소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계획과 이번 이업종간의 상호지보 해소가 상충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금융경색으로 기업의 운전자금 조달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상호지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책도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예를들어 정부와 민간 출연으로 신용보증기관을 설립해 계열사간 채무보증의 일부를 기금의 보증으로 대체하거나 상호지보 해소기준일을 기존 여신 만기시로 전환하거나, 만기시차환의 경우 신용대출로 전환 부실기업 합병시에 해당기업의 보증분을 신용대출로 전환하는 방안 상호지보를 출자전환으로 촉진하거나 중복보증 해소 등의 조치가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 -현대의 기아차 인수를 비롯한 구조조정과정에서 금융권의 부담은 물론 막대한 정부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에게 짐을 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 ▲부실기업은 그대로 두면 금융기관과 국민만 커지게 되므로 하루라도 빨리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이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는 길입니다. 어느 기업이 부실기업을 인수하든 최소한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선에서 부채를 떠안고 살 수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워크아웃(Workout)의 기본취지가 기업회생(Work)에 있음에도 퇴출(Out)만을 고집한다면 구조조정은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칠 것입니다. -끝으로 구조조정 타스크포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구조조정방향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지만 양해각서 작성과정에서 지분비율결정문제 등에 대한 당사자간 첨예한 입장차이로 설득과 타협이 안돼 조정자체가 벽에 부딪쳤을 때입니다. 그러나 더욱 힘을 빠지게 하는 것은 재계의 입장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고 자꾸 왜곡돼 비치는 것입니다. 재계의 입장이 투명하게 전달되지 않을 때마다 참여기업들이 이런 식의 구조조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박차고 나갈 때 가장 힘들지요. 어쨋든 국민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상큼한 묘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