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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찾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30층 높이의 9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이 육중한 선박 블록을 도크에 내려놓자 뼈대만 앙상하던 철골 구조물이 차츰 배의 윤곽을 드러냈다. 여의도 1.5배에 달하는 495만㎡의 야드에는 특수 차량 수십 여대가 선박 부품을 실어나르느라 분주했고 선박 중후반부 작업이 이뤄지는 안벽(岸壁)마다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컨테이너선, 드릴십,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등이 들어서 위용을 뽐냈다.
지난 2개월 사장 선임 지연에 따른 어수선한 분위기는 오간 데 없이 4만여 대우조선·협력업체 임직원들은 당일 작업 계획을 묵묵히 소화해내며 위기 극복에 여념이 없었다.
이틀 전인 28일 정성립(사진) 사장 내정자가 1박 2일 일정으로 들러 선박 건조 현장을 꼼꼼히 챙기고 직원들을 격려한 영향도 커 보였다. 지난 2001~2006년 대우조선 사장을 지낸 정 내정자는 9년 만의 친정 방문에 감격할 새 없이 심도 있는 업무 파악과 문제점 진단에 돌입했다. 대우조선의 한 관계자는 "그간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현황을 잘 알았고 임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며 업무보고 분위기를 전했다. 임직원들은 앞선 사장 재임 기간 중 대우조선을 워크아웃에서 탈출시킨 정 내정자가 이번 고비에서도 힘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LNG선 발주물량 66척 가운데 37척을 따내며 국내 조선 '빅3' 중 유일하게 수주 목표(145억달러)를 달성했다. 단연 세계 1위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기'가 강조되는 것은 수주는 2~3년 뒤에나 실적으로 반영될 뿐 지금은 2011~2013년 수주한 해양플랜트 해결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당시 해양플랜트 '초보'였던 국내 조선 '빅3'가 수주한 물량 상당수는 실제 건조비용이 계약금액을 크게 웃돌며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올 1·4분기의 경우 2006년 3·4분기 이후 8년여 만에 영업손실이 예상되는 등 내년까지는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여기에 대우조선의 올 1·4분기 선박 수주가 20% 급감한 것도 고민거리다. 정 내정자는 수익성 개선과 신규 수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령탑에 섰다. 이를 반영하듯 정 내정자는 지난 업무보고에서 임원들에게 강력한 원가절감 노력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은 마른 수건도 짜낸다는 자세로 도장용 작업복을 재활용하는 등 소모성 자재를 최대한 아끼는 한편 선박 건조기간을 단축해 비용을 줄이는 데 온갖 기술을 집약하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LNG선 '마란 가스 미스트라스'의 경우 인도를 한 달 반가량 앞두고 한창 콜드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LNG선은 영하 163도로 천연가스를 액화해 운반하므로 각 시설이 극저온을 잘 견디는지 확인해야 한다. 과거에는 콜드테스트를 위해 직접 가스를 액화해 싣느라 닷새가 걸렸지만 대우조선은 액화 질소를 주입해 점검하는 자체 플랜트를 개발해 이틀 만에 끝내고 있다. 이밖에 선박 블록 내부에 배관 등 설비를 미리 설치한 뒤 도크에서 한 번에 조립하는 선행화 작업도 건조기간을 줄인다. 송하동 대우조선 부장은 "LNG선을 만드는 데 18개월이 걸려 타사보다 6개월가량 짧다"고 말했다.
LNG선 재액화장치(PRS)도 대우조선의 핵심 경쟁력이다. 자연 기화(액체→기체)되는 LNG를 다시 액화하는 장치로 선박 운용 효율성을 끌어올린다. 기화 방지를 위해 화물창 벽을 두껍게 하거나 보온 작업에 치중하지 않아도 돼 적재공간이 늘고 건조기간도 짧다. 대우조선은 PRS 방식 LNG선을 2012년 처음 수주(2척)한 데 이어 2014년 17척을 수주했다. 올해 1·4분기에 수주한 LNG선 6척 중 5척이 PRS 방식으로 점차 대세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송 부장은 "PRS는 건조비용과 기간 모두 아끼는 효자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PRS 방식 LNG선은 내년 상반기 인도를 앞두고 있으며 현재는 선박 블록 조립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