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80년 5월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3차 총회에서 밝힌 천연두 퇴치 소식에 세계가 감격에 젖었다. ‘병마 없는 세상’이 머지 않았다는 기대도 생겨났다. 그럴 만했다. 천연두가 어떤 병이던가. 유사 이래 연 5억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살아 남더라도 얼굴에 곰보 자국을 남기는 천형(天刑)이었기에 인류는 희망을 품었다.
천연두 퇴치 공식 선언의 이유는 1977년 케냐에서 감염자가 발견된 이래 발병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 WHO로서도 천연두 퇴치는 자랑할 만한 ‘업적’이었다. 1959년 수립한 글로벌 퇴치계획이 21년 만에 결실을 봤으니까.
치료법이 알려지고도 인간은 천연두와의 오랜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생각해낸 1773년으로부터 따지면 만 207년 만에 천연두를 완전 정복한 셈. 사람들은 21세기쯤이면 전염병의 공포에서 해방되리라 기대했다.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다. 천연두 소멸 이듬해인 1981년 에이즈가 출현한 뒤 지금까지 30여개의 신종 전염병이 생겼다. 항생제 남용으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도 나타나 인간을 괴롭힌다. 기억에서 멀어져가던 결핵ㆍ말라리아ㆍ홍역 등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천연두로부터는 과연 안전할까. 장담하기 어렵다. 원천적으로 균이 살아 있다. 세균전을 위해 주요 국가들이 ‘학술실험용’이라는 미명 아래 천연두균을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5월8일은 백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천연두균으로 학살하고 터전을 빼앗은 폰티악전투(1763년) 발발 246주년이기도 하다. 인간의 탐욕이 살아 있는 한 전염병 극복은 불가능한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세균과 증오심ㆍ탐욕. 어느 것이 인간에게 가장 해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