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업계의 '다윗' 스즈키가 세계적 '골리앗' 기업인 폭스바겐과 6년간의 '잘못된 만남'을 완전히 정리하게 됐다. 제휴 당시만 해도 스즈키는 폭스바겐의 앞선 기술력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국 남은 것은 장기간의 법정 분쟁뿐이다.
30일(현지시간) 폭스바겐은 자본제휴를 중단하는 차원에서 자사가 보유한 스즈키 지분 19.89%를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스즈키 측이 협약을 어겼다는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의 판정에 따른 것이며 폭스바겐은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즈키가 폭스바겐과 제휴를 맺은 것은 지난 2009년 말이었다. 당시 스즈키는 폭스바겐의 하이브리드차·전기차 기술 등을 배울 목적으로 폭스바겐의 지분 15%를 취득했다. 폭스바겐 역시 소형차 시장의 강자인 스즈키의 저원가제조 비법과 높은 인도 시장 확대를 위해 170억유로에 스즈키 지분 19.89%를 인수했다. 스즈키는 지난해 인도에서 42%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할 정도로 강자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손을 잡을 당시만 해도 스즈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폭스바겐의 도움을 받아 자사의 주력 소형차인 '스위프트'나 'SX4'를 하이브리드차 버전으로 2012년 말까지 개발하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전기차용 배터리팩 개발에서도 기술지원을 기대했다. 아울러 폭스바겐의 소형 세단인 '제타' 하이브리드 버전 등을 공급 받아 북미 시장을 공략하는 계획도 짠 것으로 전해졌다. 폭스바겐은 스즈키의 경차인 'A-스타'를 공급 받아 인도와 유럽 시장에서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양측은 신혼부터 삐거덕댔다. 스즈키는 하이브리드차 등의 일부 기술에 대한 완전한 공개를 요구했지만 폭스바겐 측은 그런 민감한 정보는 같은 그룹 계열사인 아우디와도 공유하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A-스타 인도 판매 버전 개발 과정에도 외관 변화를 위해 스즈키 측은 폭스바겐 측에 디자인 자료를 받아야 했지만 폭스바겐 측은 제출을 미적거렸다고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소개했다.
이처럼 양측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2011년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폭스바겐이 제대로 첨단기술을 이전해주지 않는다고 느낀 스즈키가 이탈리아 피아트로부터 디젤엔진을 사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폭스바겐이 그해 9월 협약 위반이라고 통지서를 보내자 스즈키 측은 핵심기술을 이전해주지 않았다며 제휴를 끝내자고 요구했다. 이어 폭스바겐 측에 지분을 되팔라고 요청했지만 폭스바겐이 거부하자 스즈키는 그해 11월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했고 장기간의 소송 끝에 패소하고 말았다.
소송 장기화 과정에서 양측 모두 상처를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영세한 스즈키가 받은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이브리드 시장 진출에도 사실상 실패한데다 북미 시장 공략의 청사진도 무너졌다. 반면 폭스바겐 역시 인도 시장 등 공략의 계획에 차질을 빚었지만 도요타와 함께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실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더구나 스즈키의 주가가 올랐으므로 폭스바겐으로서는 해당 지분 매각을 통해 시세차익도 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