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로 가려면 어떻게 할까요?… 물 절약.”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의 화장실 문에는 다소 생뚱맞은 표어가 붙어 있다. 최근 1년 새 원화환율이 20% 가량 추락, 수출기업들이 채산성 위기를 맞으면서 국내 1등 기업인 삼성전자까지 이처럼 고강도 절약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낄 물조차 없는 중소 수출업체들은 한숨만 쉬고 있다. 컴퓨터부품업체인 A기업의 B사장은 “해외수출도 이미 적자 상황인데 국내 원청업체(대기업)들까지 환율하락을 핑계로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중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요”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말 1,200원대에 육박하던 환율이 1년여가 지난 지금 1,000원대 하향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 수출업체들이 해외에 물건을 팔 때 무려 20% 가량의 원가부담을 추가로 떠안게 된 셈이다. 3일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기업의 80% 가량이 손해를 보고 해외에 물건을 내다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경제의 수출의존도가 6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는 이미 ‘적자경제’의 문턱에 들어선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ㆍLG전자ㆍ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환율급락의 위기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비용절감 ▦수출다변화 ▦환리스크 관리 등을 뼈대로 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전자업계는 반도체와 LCD 등 주요 사업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며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하락까지 겹쳐 수익성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36개 주요 대기업의 환율 민감도를 조사해본 결과 원ㆍ달러 환율이 100원 하락할 경우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평균 8.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자동차가 영업이익이 26% 줄어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됐다. 이밖에 조선은 21.8%, 전자는 16.2%, 기계는 13.6%, 화학은 12.9% 가량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경영계획상 평균환율은 1,050원. 그러나 연초부터 달러 대비 원화환율이 이 수준 아래로 이미 내려가 올해 평균환율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주력업체인 삼성전자의 수출전선에 이상기류가 형성되면서 삼성은 올해 수출목표인 590억달러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삼성전자는 약 6,000억원(5억9,000만달러) 가량의 손실이 생기므로 환율이 1,000원을 하향 돌파하면 삼성전자 한 회사의 손실만 3조원 이상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우식 삼성전자 IR팀 전무는 “환율 등 전체적인 시장동향을 지켜보면서 무리가 있다면 경영계획을 적정하게 보완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목표환율을 1,050원으로 잡은 현대차도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경우 연초 수립했던 경영목표를 재조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현대차는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해외 수출물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보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현대차는 수출물량 확대를 위해 ▦비달러지역의 수출을 확대하고 물량을 우선 배정하며 ▦신모델을 조기에 선보이고 ▦RV 등 수익성 높은 모델의 판매를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유럽시장 수출확대를 위해 디젤엔진 개발투자를 확대하고 ▦유럽지역 판매력ㆍ자금력이 우수한 양질의 딜러망을 확보하며 ▦미국공장 현지화율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다른 그룹에 비해 보수적으로 올해 평균환율을 970~980원으로 잡아 상대적으로 여유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환율하락이 계속된다면 이 회사 역시 수익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어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LG화학ㆍ삼성토탈 등 수출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업체들도 수익을 압박받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기준환율을 1,000원으로 매우 보수적으로 잡았지만 최근 환율하락에 따라 일부 제품의 경우 출혈수출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