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또 다른 '정부의 실패'

[데스크 칼럼] 또 다른 '정부의 실패' 정문재 timothy@sed.co.kr 벌써 19일째다. 초조와 불안, 무력감의 연속이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협상 시한이 연장됐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인질 피살 뉴스에 치를 떨어야 했다. 불쾌지수도 높아만 간다. 극도의 무력감 때문이다. 우리의 형제자매가 쓰러져가는데도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분노의 화살이 탈레반을 향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찾아간 사람들을 사격장 표적처럼 취급했으니 당연한 분노였다. 탈레반의 주장을 듣다 보면 ‘코드(code)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탈레반 대변인은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피랍자 가족들이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는 힐난성 질문에 “왜 그들은 아이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것을 막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탈레반 대변인은 “우리는 외국인 살해를 경고해왔다”면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면 미국의 동맹국이며, 이들 나라 국민은 모두 적(敵)”이라고 밝혔다. 피하지 못한 단층선(斷層線) 결론은 명쾌해진다. 피랍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사랑을 전해줘야 할 이웃으로 생각한 반면 탈레반은 그저 피랍자들을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적(敵)’으로 여긴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곧 단층선(斷層線)으로 작용, 희대의 납치극을 연출했다. 단층선이 발견되면 그곳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층선을 발견했다고 해서 인간의 힘으로 지진까지 막을 수는 없다. 정부는 국민들이 이런 단층선을 피할 수 있도록 이달 초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ㆍ소말리아와 함께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했다. 여행 금지국에 무단 입국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여행금지 조치에 대해 말이 많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얘기부터 ‘뒷북 대응’이라는 비난도 들린다. 더욱이 탈레반이 요지부동인 탓에 화살은 이제 정부로 날아들고 있다. 주로 정부의 대응능력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직접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탈레반은 우리 정부가 갖고 있지 않은 카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질 사태가 하루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는 정도다. 그래서 정부의 무기력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무기력한 정부를 만든 데는 국민의 책임도 크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정부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듣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앞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들은 ‘최근 탈레반이 수감 중인 동료 석방을 위해 한국인들을 납치한다는 정보가 있으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아프간 여행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적힌 출국장 입구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국민이 힘을 실어줘야 정부가 시장 실패를 시정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상황을 ‘정부의 실패’라고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부의 실패’는 주로 정보의 부족, 규제의 경직성 등에서 비롯된다. 아프간 인질 사태도 일종의 ‘정부의 실패’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은 전혀 다르다. 그 원인은 바로 ‘정부에 대한 불신’, 나아가 ‘정부의 약화’다. 지금은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권력이 다양한 사회 집단에 분산돼 있다. 스님이 단식에 들어가면 철도 건설을 위한 터널 공사를 몇 년씩 연기해야 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사회 전체로는 바람직한 정책이라도 특정 이해집단이 맹렬히 반대하면 접어야 한다. 정부는 사회적인 가치 배분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하지만 이 장치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정부의 역량이나 수준은 국민이 결정한다. 국민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 정부는 ‘무정부(無政府)’ 상태와 큰 차이가 없다. 입력시간 : 2007/08/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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