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수입차 보험사기 '모럴해저드의 온상'

동호회원끼리 짜고 … 의사·변호사도 가담 … 수리비 제도 등 정상화 시급

정비·렌터카업체도 가세… 지능범 놀이터로



모호한 산출기준·폐쇄적 부품값 등 허점 노려

비용 선지급 악용… 수리 안하고 돈만 타가기도


렌털비용 정상화 등 실효성 있는 대책 세워야


서울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이동건(가명)씨는 얼마 전 동료의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집이 멀지 않다는 이유로 운전대(벤츠)를 잡았다가 보도블록 충돌사고를 냈다. 수리비만 4,500만원이 나왔는데 음주운전이 발각되는 바람에 수리비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사고날짜를 임의로 변경해 보험사에 수리비를 청구했다. 이후 허위신고가 발각돼 사기죄로 형사입건됐다.

수입차 BMW동호회 회원인 양지환(가명)씨는 얼마 전 경찰서에 소환됐다. 동호회 회원들과 벌인 보험사기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주동자는 과거부터 해왔으며 늘 성공했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미리 수배해놓은 공업사와 렌터카 업체도 만나본 터여서 꼬드김에 쉽게 넘어갔다.

수입차를 이용한 보험사기가 모럴해저드의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험사기 적발건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화이트칼라들도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등 범죄의 양성화 현상도 짙어지고 있다.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1월부터 올 4월까지 3년간 발생한 자동차 대물사고 총 17만건 중 BMW·벤츠 등 중고 고급외제차를 이용한 보험사기는 687건(보험금 42억원)에 달했다.

수입차 보험사기 유형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서울지방검찰청은 4월 수입차 이용 전문 보험사기범 11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가해차량 운전자를 모집하고 치밀한 사고계획으로 블랙박스 영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각색하는 등 지능적으로 보험범죄를 실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애꿎은 일반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입차 보험사기가 늘면서 손해율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2011년 74.3%였던 자기차량 손해율은 2013년 82.0%로 급증했다. 손해율이 악화되면 보험료 인상의 명분이 돼 선량한 보험소비자들의 2차 피해로 이어진다.

수입차 판매대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입차 수리비, 렌털비용 제도개선 등 후속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09년 말 42만5,000대였던 수입차는 지난해 말 현재 90만4,000대로 급증했다.

이득로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본부 상무는 "공익적 성격이 강한 자동차보험이 일부 부도덕한 정비 업체, 렌터카 업체 등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보험가입자 부담이 늘어나는 식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며 "수리비 제도 등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수입차 보험사기는 일부 부도덕한 범죄자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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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데에는 제도적 허점과 함께 일반 보험소비자들에까지 전염되기 시작한 모럴해저드가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목격되는 수입차 보험사기가 요지경에 가까운 것도 이 때문이다.

수입차 보험사기는 그만큼 만연화 돼 있다. 유형은 천태만상이며 사기범죄 가담주의 범주도 확장되고 있다. 지인 간 결탁에 의한 보험사기에서 최근에는 정비업체, 렌트카업체까지 가담한 점조직 형태의 사기로까지 진화했다.

전문가들은 수입차 보험사기를 근절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보험사기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는 수리비·렌트카 운영제도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범죄를 유발하는 먹이부터 없애야만 보험사기 유인이 줄어들고 일반인들에게까지 침투한 모럴해저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 허점 노린 보험사기 기승=수입차 보험시장은 사기범들에게 있어 놀이터와 같다. 그만큼 제도적 허점이 많다는 뜻이다.

수입차의 경우 명확한 수리비 산출 및 청구기준이 없다. 부품가격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지난해 수입차 평균 수리비는 276만원으로 국산차(94만원)에 비해 3배 가량 많았다.

경미사고를 빙자한 수입차 보험사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인적 피해가 없는 자동차 사고는 사후조사가 느슨하게 이뤄진다. 보험사기의 유혹이 커지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적발됐던 42억원의 사기 보험금 중 대물 보험금은 약 34억원으로 80% 이상을 차지했다.

미수선수리비 제도는 사기범들이 노리는 가장 큰 구멍이다. 미수선수리비는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차량 소유자와의 협의를 통해 수리비를 미리 지급하는 제도다. 보험사기에 즐겨 쓰이는 중고 수입차의 경우 수리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 민원발생 여지가 크다.

사기범들은 이 틈을 파고 들어 합의금을 낮추는 대신 보험금을 타낸다.

대형손보사 관계자는 "희귀차량의 경우 차값은 2,000만원인데 부품값은 그 이상 나오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민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보다는 낮은 가격에 합의를 하게 되는데 사기범들은 차는 고치지 않고 돈만 타가는 수법을 주로 구사한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제도, 강력한 시행 의지 필요=정부는 수입차 수리비 제도개선의 일환으로 올 8월부터 '차량 부품가격 공개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가 적용된 지 5개월이 돼가지만 실효는 미미하다. 이 제도가 부품가격 정상화에 기여하려면 부품가격 세분화가 필수적이지만 부품업체들은 부품이 아닌 차체 부위별로 단가를 공개하고 있다.

이득로 손보협회 자동차본부 상무는 "수입차 보험사기는 주로 경미사고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막으려면 개별 부품별로 가격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러나 수입차 부품업체들은 전문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이 알기 어려운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수리비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대체부품 활성화 제도' 역시 실효가 크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체부품 유통구조와 인증절차를 체계적으로 확립할 필요가 있는데다 디자인보호법 같은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량 부품가격 공개제도'처럼 헐겁게 운영될 경우 있으나 마나 한 제도로 전락할 게 뻔하다. 제도마련과 함께 강력한 실행의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렌트비 정상화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작년 수입차의 평균 렌트비는 131만원으로 국산차량(40만원)에 비해 3.3배 높았다.

손보사 관계자는 "수입차라고 해서 렌트차량을 반드시 수입차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유사한 배기량의 국산차로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합리적 수준을 넘어선 부품조달기간은 렌트카 사용기간에서 배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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