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데뷔작이자 흑백영화인‘밀라노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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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과 4월은 영화계의 대표적인 비수기, 이른바 ‘보릿 고개’라고 불리는 시기다. 하지만 영화 마니아들에겐 오히려 이 보릿고개가 즐거운 시간일 수 있다. 영화 배급사들이 비수기를 틈타 그 동안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개봉하지 못했던 작은 영화들을 연달아 개봉하고 있기 때문.
평소 한국영화나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밀려 간판을 올릴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이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속속 개봉하고 있다. 아카데미 수상작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스릴러에 국내에선 정말 접하기 힘들었던 컬트영화까지 그 장르도 다양한 이 영화들 중 놓치기 아까운 영화 6편을 만나보자./서필웅기자 peterpig@sed.co.kr
■ 말라노체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팀 스트리터, 더그 쿠아이엣
개봉: 3월 29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은 ‘아이다호’, ‘굿 윌 헌팅’과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엘리펀트’의 감독 구스 반 산트이 1985년에 만든 첫 감독 데뷔작. 그 동안 소수 영화팬들의 끊임없는 호평 속에 20년 만에 국내 개봉한다. 단돈 2만5,000달러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로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멕시코계 청년과 격렬한 동성애에 빠진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거친 흑백 화면 속에 펼쳐지는 젊은 날의 사랑과 좌절을 구스 반 산트 만의 감성으로 펼쳐 놓았다.
영화는 미국 포틀랜드 오리건 출신의 전설적 시인으로 알려진 월트 커티스의 자전 소설 ‘말라노체’를 원작으로 했다. 구스 반 산트는 이 영화의 성공으로 비평계의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주류 영화계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이후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아이다호’를 통해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명감독 구스 반 산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 국내에서는 2006년 서울영화제에서 단 한 번 상영된 것을 제외하면 관객을 만난 적이 전혀 없었기에 정말 반가운 기회가 될 듯.
■ 플루토에서 아침을
감독: 닐 조던
출연: 킬리언 머피
개봉: 4월 5일
‘크라잉 게임’, ‘마이클 콜린스’과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푸줏간 소년’ 등 사회성 높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도발적 매력을 갖춘 영화를 만들어온 영국 감독 닐 조던의 신작.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조롱하면서도 결국은 그런 사회의 결점마저도 따뜻하게 감싸줄 줄 아는 감독인 그는 새로운 작품 ‘플루토에서 아침을’에서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낙천적 세계관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성적 정체성 문제로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해도 좌절하는 대신 오히려 더욱 인생을 당당히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세상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선한 것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세계에 대한 낙천적적 희망이 가득한 영화다.
지난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인공 ‘키튼’을 연기했다.
■ 상성: 상처박은 도시
감독: 유위강, 맥조휘
배위: 양조위, 금성무, 서기
개봉: 4월 12일
지난 2002년 ‘무간도’를 통해 새로운 홍콩 느와르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었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새로운 영화. 그들의 전작인 ‘무간도’는 미국에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에 의해 ‘디파티드’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돼 지난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알짜배기 4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번 영화 ‘상성: 상처 받은 도시’는 자신이 형제 이상으로 아끼던 형사 파트너가 장인의 살인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뒷조사하는 가운데에서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한 형사의 이야기. 자신이 아끼던 사람과 한판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는 남자들의 모습을 다룬 느와르 영화다. 양조위가 살인사건에 연루된 형사 ‘유정희’역을, 금성무가 이를 조사하는 젊은 형사 ‘아방’역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 역시 ‘디파티드’의 각본가 윌리엄 모나한에 의해 각색되어 할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 블루 프린트
감독: 롤프 슈벨
주연: 프란카 포텐테
개봉: 3월 29일
지난 2000년 국내 개봉해 많은 마니아들을 만들었던 ‘글루미 선데이’의 롤프 슈벨이 당시의 촬영, 편집, 음악 등 제작진을 다시 모아 만든 작품. 독일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소설 ‘블루 프린트’를 스크린에 옮겼다. 이미 전세계 12개 언어로 번역돼 소개됐으며 국내에도 2002년 출간된 바 있는 이 소설은 인간복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풀어내 호평 받은 바 있다.
영화의 내용은 불치병에 걸린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재능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똑같이 닮은 복제인간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 이 피아니스트가 딸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쌍둥이인 복제인간과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국내 팬들에겐 ‘롤라 런’, ‘본 아이덴티티’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독일 여배우 프란카 포텐테가 주인공 두 사람을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 엘 토포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배우: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기이하면서도 독특한 정신세계를 투영한 작품들로 전설적인 컬트 영화 감독으로 추앙 받고 있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개봉해 소수 팬들에게 추앙에 가까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던 이 영화는 초현실주의적 아름다움을 웨스턴 영화 풍 화면에 담아내 컬트 영화 역사 속 최고 명작 중 한편으로 꼽힌다.
그의 영화는 표현수위가 높고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동안 표현수위와 신성모독의 문제 때문에 국내 개봉이 미루어졌던 ‘엘 토포’는 무삭제본으로 개봉한다. 그의 영화 중 1994년 유일하게 국내 개봉했던 ‘성스러운 피’가 여기저기 잘려나간 삭제본으로 개봉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국내 처음으로 그의 영화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인 것.
‘엘 토포‘외에 ‘홀리 마운틴’도 동시에 국내 개봉된다. 이 영화는 예수를 닮은 한 사내가 세상에 떨어져 신이 되고 이를 통해 대중을 기만하고 통제하는 이야기를 초현실주의적 화면에 담은 그의 또 다른 걸작이다.
■ 씨 인사이드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개봉: 3월 15일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스’, ‘디 아더스’ 등에서 보여준 현란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이야기로 ‘스페인에서 온 천재감독’으로 불리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2005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는 선원 출신으로 불구가 된 후 29 년간 '자살할 권리'를 주장하다가 결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락사를 한 실존 인물 라몬 삼페드로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감독은 안락사라는 민감한 문제를 통해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주장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이 영화로 2005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 국내 영화팬들에겐 1992년 개봉됐던 ‘하몽하몽’을 통해 섹시한 배우의 이미지로만 알려졌던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몇몇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 대부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연기를 통해 주인공의 고뇌를 관객에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