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일시적 성욕 낮출 순 있지만 근본 해결책으론 역부족"

24일 시행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法' 실효성은?<br>투약 중지 순간 호르몬 재분출로 또다른 범죄 유발할 가능성 커<br>지속적 감시·통제뿐만 아니라 행동·인지 치료 등도 병행 필요<br>청소년 대상 약물 치료 적용은 기본권 등 인권침해 소지 우려

지난해 부산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한 김길태(가운데)가 검거돼 압송되고 있다. /서울경제 DB


'김수철ㆍ김길태ㆍ조두순...' 미성년자를 상대로 잔혹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사회의 공분을 샀던 장본인들이다. 김수철과 김길태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 12월 범행을 저지른 조두순의 경우 '음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음주감경 조항이 적용돼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조두순은 2009년 9월 형이 확정돼 복역 중으로 늦어도 2021년 사회로 복귀한다. 2021년이 되면 사회는 그의 복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두려움 속에 살아갈 지 모른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7월 23일 제정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오는 24일 효력을 발휘한다. 이른바 화학적 거세법으로 알려진 이 법은 아동이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폭력을 휘두른 범죄자가 다시 일반인들과 마주칠 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았다. 법의 뼈대는 ▦16세 미만의 사람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의 성도착증 환자에게 ▦출소 2개월 전부터 최장 15년간 비정상적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 또는 완화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되 ▦약물 치료여부는 검사의 청구를 심리한 법원이 결정하도록 구성돼있다. 즉 사건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성폭력 피의자를 대상으로 전문가의 정신감정을 의뢰하고, 여기서'성도착증 환자'라는 소견이 나오면 약물치료명령을 형과 함께 법원에 청구하게 된다. 재판 과정에서는 약물치료가 진정으로 필요한 대상인지 확인하고 필요시 법원은 다른 전문기관에 재감정을 의뢰할 수도 있다. 또한 지금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수형자들도 본인이 원하는 경우 별도의 절차를 밟아 약물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화학적 거세에 사용할 약물은 현재 선성자극호르몬 억제제와 MPA(Medroxyprogesterone acelate)∙CPA(Cyproterone acelate) 등의 3종류로 압축된 상태다. 약물마다 치료용량이나 용법, 치료기간이 다를 뿐 아니라 비용도 차이가 난다. 효과가 강력하고 심혈관계 부작용이 적어 법 도입 후에 주로 사용될 예정인 선성자극호르몬 억제제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투여하면 되는데 회당 43~59만원이 소요된다. 이들 약물은 남성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여성형 유방이 생기거나 혈압의 변화, 간독성 등의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화학적 거세법의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는 김영운 보호법제과장은 "인체에 투여하는 약물인 만큼 생체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법에서 사용 약물을 구체적으로 지정하지는 않고 의사처방을 받아 특정 성분이 들어있는 약물을 처방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우 공주 치료감호소 소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관련법 공청회에서 "국립법무병원서 치료감호 중인 소아기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본인 동의를 받아 화학적 거세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들은 성적환상과 성적 충동 등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이 법은 그러나 제정 단계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화학적 거세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정신적 문제(뇌)로 발생한 범죄를 호르몬(고환)으로 차단하려는 접근법 때문이다. 송동호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자신의 성욕을 정상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휘두르게 되며 이는 곧 정신과 인격의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며 "화학적 거세는 본말이 뒤집힌 치료"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수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인 호르몬을 억제하는 결과론적인 방법으로는 아동 대상 성범죄가 단절되기는 어려울 수 있으며, '거세 위협' 또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화학적 거세를 통해 성욕을 낮출 수는 있지만 투약을 중지하는 순간 그간 억눌려왔던 호르몬 분비가 더욱 강하게 진행돼 또 다른 범죄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 교수는 화학적 거세의 무용론은 배제하되 "효과적인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출소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를 시행할 뿐 아니라 행동∙인지 치료 등 거세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원적 범죄 예방과 인권을 위해 몇 가지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정신적 치료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미성년자 특히 어린 아이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대개 이성과의 성접촉에 자연스럽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전∙환경적 요인으로 잘못된 이성관을 품게 된 사례도 다수 발견된다. 따라서 여성을 성욕 분출의 대상으로 보는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주는 상담치료나 역할극 치료 등이 화학적 거세를 뒷받침해줘야만 제2, 제3의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학적 거세는 성욕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발기력이 보존되고 범죄자가 약제의 효능을 없애는 또 다른 약물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범 방지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다. 인권침해 소지도 있다. 범죄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법원의 판결과 함께 떨어지는 치료명령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보호할 대상으로 규정한 19세 이상 24세 이하의 이들도 약물치료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법이 너무 앞서나갔다는 지적의 근거가 되고 있다. 실제로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를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유럽 각국은 본인 동의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화를 통한 심리치료를 우선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 호르몬 억제책을 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29년 유럽 최초로 거세에 관한 절차를 마련한 덴마크는 법학자와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를 통해 투약여부를 결정하며, 본인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 역시 정신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한 달 가량의 검사를 통해 대상자를 걸러낸다. 이곳 역시 환자가 원하는 경우에 한해 화학적 거세를 실시한다. 이들 나라는 과격한 성폭력을 시도한 범죄자일수록 화학적 거세만으로는 재범을 방지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정신적 치료를 강화했다.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법에서 신체에 직접 작용하는 처벌을 규정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영혼의 파괴로 불리는 성폭력을 저지른 흉악범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판결로 거세를 명령하는 것은'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근대 형법의 기본적인 원칙에는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극단적인 경우 본인이 원하지 않은 약물 치료로 부작용을 겪게 된 성범죄자가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부작용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된다. 양태열 한림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는 지난달 열린 공청회에서 "남성호르몬의 저하로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를 비롯해 개인적 특성에 의한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화학적 거세를 명령한 법안이 통과된 이상, 법무부는 지금껏 제기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행령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법무부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전문가 집단에 의뢰해 화학적 거세를 시행할 때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성가족위원장인 최영희 민주당 의원이 나섰다. 최 의원은 치료명령 대상자의 동의 하에 25세 이상 범죄자에게 약물 투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후에 이뤄지는 화학적 거세는 사후약방문일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성욕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이 치료의 일환으로 화학적 거세를 원하는 경우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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