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0일] 김수근

내로라하는 건축물이 그에게서 나왔다. 한국일보 사옥을 비롯,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본관, 타워호텔, 부산 종합운동장, 경동교회, 법원청사, 올림픽 주경기장까지. 건축가 고 김수근은 이란과 말레이시아에도 작품을 남겼다. 1931년 2월20일 태어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1960년 현상공모된 국회의사당 설계. 5ㆍ16 쿠데타로 공사는 설계도대로 진행되지 못했지만 서울대 중퇴 후 일본에 밀항해 현대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수근은 일약 주목받는 건축가로 떠올랐다. 1986년 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남긴 200여개의 작품에는 서울대 예술대학과 부여ㆍ청주ㆍ진주박물관, 한계령 휴게소도 포함돼 있다. 미 타임지는 그를 ‘경탄할 만한 한국의 건축가’라고 소개했다. 김수근은 건축은 물론 문화운동가로도 업적을 쌓았다. 종합예술잡지인 ‘공간’을 창간(1966년)하고 77년에는 소극장 ‘공간사랑’을 개관,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춤꾼 공옥진 등을 길러냈다. 후진을 양성하고 문화 예술을 전파하는 데는 크게 기여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돈 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술회관이나 하나 짓자’고 기부한 땅 120평 위에 들어선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은 동숭동 대학로 일대를 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그룹사옥을 확장하기 위해 공간사 사옥을 거액에 매입, 철거하려는 재벌그룹에 면박을 준 일화도 유명하다. 김수근의 말년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한국적 고전미와 서구가 결합된 건축에 집중됐다고 전해진다. 건축계뿐 아니라 국가가 관심을 지닐 만한 사안이다. 갈수록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바이와 싱가포르 등은 수백억달러를 쏟아가며 도시를 꾸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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